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예료멘코

Андрей Иванович Ерём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892–1970 ○ 자연사

스탈린그라드의 남쪽 집게발을 닫은 기병 출신 사령관

1941년 8월, 브랸스크 전선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예료멘코는 스탈린에게 직접 "그 악당 구데리안을 때려부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실패했고, 구데리안은 키예프를 포위했다.

우크라이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병사에서 소련 원수까지 오른 군인. 부됸니의 제1기병군에서 내전을 치렀고, 기병 장교로 숙청기를 무사히 통과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남동전선(후에 스탈린그라드 전선)을 지휘하며 흐루쇼프와 함께 도시 방어 계획을 세웠고, 천왕성 작전에서 남쪽 포위망을 닫아 파울루스의 제6군을 가두는 데 성공했다. 전쟁 동안 무려 여덟 개 전선군을 지휘했고, 1945년 제4우크라이나 전선군을 이끌어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해방을 완수했다. 전후 1955년 원수 계급을 받았으나 군사적 성과와 달리 정치적 비중은 제한적이었다. 금지된 종전 일기를 전쟁 내내 몰래 써내려간 기록자이기도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금지된 전시 일기: 문서로 남긴 기록자

예료멘코는 전쟁 내내 일기를 썼다. 전쟁 중 기록은 금지되어 있었는데, 적의 손에 들어가면 군사기밀이 그대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금지된 일기를 계속 써 내려갔다.

이 기록이 사료로서 온전히 인정되는지는 논란이 있다. 2013년 간행본은 예료멘코가 남긴 여러 시기·성격의 글을 기계적으로 묶어 놓은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있으며, 전시에 그가 실제로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위치와 이동 정도를 적은 두세 문장짜리 극히 간략한 메모였다는 분석도 있다. 처음부터 전쟁 회고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자기 역할을 높게 평가하는 서술이 많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다만 문서 자체는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0년대에 부분이 공개된 뒤 2013년 처음으로 전체가 출판되었다.

일기 바깥의 저술 활동도 활발했다. 그는 1943년 봄 칼투보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으며 스탈린그라드에 관한 첫 책의 초고를 썼다. 1950~60년대에는 《전쟁 초에》(1965), 《서부 방면에서》(1959), 《응징의 세월》(1969) 등 회고록을 펴냈으며, 그 안에서 함께 복무한 많은 지휘관들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 전후 소비에트 원수들의 회고록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흐름에서 그의 책들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사료로 쓰인 또 하나의 기록은 그가 1956년 개인숭배 비판 보고와 관련해 남긴 편지다. 그는 흐루쇼프에게 자신이 보고를 맡겠다고 지원했고, 2월 24일 초안을 검토한 뒤 자신의 의견을 편지로 보냈다. 여기에는 스탈린그라드 양 전선군 통합 제안을 두고 스탈린이 처음에는 그를 꾸짖었다가 곧 통합했던 일, 그리고 만슈타인 격파를 위한 스탈린의 계획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그의 부정적 평가가 담겼다.

이 일기와 저술은 그가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되게 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스탈린그라드처럼 논쟁적인 전투에 대해 당사자가 남긴 기록이 어떻게 사료가 되고, 또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함께 드러낸다.

사실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시 기록 금지는 문서로 확인된다. 1990년대 부분 공개와 2013년 전체 출판, 그리고 1956년 2월 24일자 편지의 내용도 확인된다. 반면 2013년 간행본의 구성과 실제 기록량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에 따라 다르며, 이는 하나의 해석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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