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를 시도했지만 상부 명령에 묶인 사단 지휘관
보급로가 끊긴 뒤에도 철수 허가를 받지 못한 그는 사단 일부를 이끌고 얼어붙은 키안타야르비호를 건넜다.
안드레이 젤렌초프는 제정 러시아군 장교 출신으로 붉은 군대에 합류해 내전과 군 조직 개편을 거친 직업군인이었다. 겨울전쟁에서 제163소총사단을 이끌고 수오무살미를 점령했지만, 보급로가 끊기며 사단이 소련군 최초의 포위망에 갇혔다. 그는 철수를 요청했으나 허가받지 못했고, 결국 사단 일부를 이끌고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 국경으로 빠져나왔다. 이후 제88소총사단을 지휘했으며 1941년 카렐리야 전선에서 전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8–1921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5–1917제정 러시아군 보병 장교와 항공 관측장교
- 1918–1921붉은 군대 입대, 내전기 군사위원·후방 지휘관
- 1921–1933소총연대 지휘와 군사교육·참모 보직
- 1936–1939제5독립중전차여단 참모장, 제3소총군단 기갑부대 책임자
- 1939–1940제163소총사단장,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포위와 철수 지휘
- 1940–1941소장 진급, 제88소총사단장과 아르한겔스크 군관구 임시 지휘
- 1941카렐리야 전선에서 제88사단 지휘 중 전사
관련 역사 사건
쿠흐모 구원 작전과 제54사단 구출
제163소총사단은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조직으로서는 사실상 소멸했지만, 사단 지휘부와 살아남은 병력은 1940년 2월 말 수오무살미 지역에서 쿠흐모 방면으로 재배치되었다. 쿠흐모 일대에서는 1월 28일부터 핀란드 제9사단이 공세를 시작해 제54산악소총사단의 45킬로미터에 걸친 행군 대열을 여러 지점에서 절단하고 여러 개의 '모티'(분할 포위진)를 만들어냈으며, 2월 1일에는 레위퇴바아라에서 도로를 끊어 후방과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했다. 돌파를 위한 별도의 임무를 맡았던 돌린 지휘의 스키 여단은 2월 중순 베트코와 케셀리 전투에서 거의 전멸했고, 다른 구원 시도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국면에서 젤렌초프가 이끄는 제163소총사단은 3월 3일 킬펠래캉가스 일대에서 핀란드군 방어선을 돌파했고, 이로써 핀란드군은 루외퇴바아라 방면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수오무살미에서 포위를 뚫고 빠져나온 지 두 달 만에, 같은 사단이 이번에는 다른 부대를 구출하는 쪽에 섰던 셈이다. 다만 구원의 최종적 성과는 사단의 돌파 자체보다 3월 13일 체결된 모스크바 평화조약에 더 크게 의존했다. 정전과 함께 제54사단의 포위 부대들이 살아남았고, 쿠흐모 전투에 참여한 양측 병력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알지 못했다. 쿠흐모 일대의 교전에서 핀란드군은 4,603명(전사 1,348명, 실종 132명, 부상 3,123명)의 손실을, 소련군은 약 20,620명(전사 약 5,318명, 실종 2,070명, 부상 13,232명)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