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맏누이이자 이스크라 지하유통을 조직한 구볼셰비키 혁명가
1932년 안나는 스탈린에게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유대인에 대해 언제나 좋게 말했습니다'라고 쓰며 레닌의 유대인 혈통을 공개해 반유대주의에 맞서 줄 것을 요청했으나, 스탈린은 거부했다.
레닌의 맏누이이자 1898년 RSDLP에 입당한 구볼셰비키. 동생 알렉산드르의 차르 암살 기도 사건으로 5년 유형을 선고받은 후, 블라디미르의 옥중 연락망과 『러시아 자본주의의 발전』·『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출판을 조직했다. 1917년 『프라우다』 편집서기로 10월 혁명을 준비했고, 혁명 후 이스트파르트와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 창립에 참여해 소비에트 역사제도의 기초를 놓았다.
경력 연표
- 1887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 사건으로 체포, 5년 유형
- 1898RSDLP 입당, 모스크바 첫 당위원회 활동
- 1900–1902『이스크라』 유통망 조직 (베를린, 파리, 러시아)
- 1909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출판 조직
- 1913–1917『프라우다』 편집위원, 편집서기
- 1917RSDLP(b) 중앙위원회국 위원, 10월 혁명 준비
- 1918–1921인민위생인민위원부 아동보호부장, 교육인민위원부 근무
- 1920년대–1932이스트파르트·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 공동창립,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 편집서기
관련 역사 사건
혁명적 편집자이자 번역가
안나 옐리자로바-울리야노바는 평생을 관통하는 번역가이자 편집자로서 볼셰비키 언론과 선전의 기반을 다졌다. 1893년 모스크바에서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합류한 그녀는 독일어로 된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희곡 『방직공』(Die Weber)을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실레지아 방직공 봉기를 그린 이 작품은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근교 노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같은 시기 그녀는 E. M. 데멘티예프의 저작 『공장, 그것이 인민에게 주는 것과 빼앗는 것』을 요약한 소책자를 집필해 노동자 계몽에 기여했다.
1905~1907년 혁명기에는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1848년 독일 혁명』과 안톤 파네쿡의 『전리품 분배』 등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며 볼셰비키 출판사 '프표료트'(Вперёд)의 번역자로 활동했다. 1913~1914년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볼셰비키의 대표적 합법 이론지 『프로스베셰니예』(Просвещение, 계몽)의 편집서기를 맡아 잡지의 실무를 총괄했다. 1914년 국제 여성의 날에 맞춰 창간된 여성 노동자 잡지 『라보트니차』(Работница)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여성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형성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같은 시기 『프라우다』 편집국에서도 활동하며 레닌과 해외 볼셰비키 중심과의 연락을 유지하고 당 자금과 문헌 수송을 조직했다.
10월 혁명 직후에는 노동자 잡지 『트카치』(Ткач, 방직공)의 편집을 맡았다. 1920년대에는 이스트파르트 기관지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편집서기를 역임하며 역사 연구 및 출판을 주도했다. 회고록 작가로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1927년 출간된 『알렉산드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와 1887년 3월 1일 사건』은 형의 혁명적 삶과 차르 암살 기도 사건을 복원한 핵심 문헌으로 평가된다. 이 저서들은 후일 『V. I. 레닌과 울리야노프 가문에 관하여』(1988)로 묶여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