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독립 선언을 주도한 초대 대통령, 뒤에 1926년 쿠데타의 지도자
페테르부르크에서 법을 공부한 언론인으로 1917년 9월 독일 점령 아래 구성된 리투아니아 평의회(타리바)의 의장이 되어 1918년 2월 16일 독립 선언에 서명했다. 독일과의 동맹을 전제로 한 12월 선언에도 서명했고 1918년 7월 우라흐 공의 국왕 추대에도 관여해 독립운동 안에서 논쟁을 남겼다. 1919년 4월 국가평의회에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붉은 군대, 베르몬트군, 폴란드군과 싸우는 첫 정부들을 이끌었고, 1920년 제헌의회가 열리자 물러났다. 1926년 12월 군부 쿠데타로 다시 대통령이 되어 정당을 금지하고 권위주의 체제를 세웠으며, 1938년 폴란드 최후통첩과 1939년 독일의 클라이페다 병합을 겪었다. 1940년 6월 소련의 최후통첩에 저항을 주장했다가 독일로 피신해 미국으로 갔고, 1944년 클리블랜드에서 화재로 죽었다.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리투아니아 평의회 의장으로 1918년 독립 선언에 참여하고 1919년 초대 대통령이 됐다. 1926년 쿠데타 뒤 권위주의 통치를 이끌었으며 소련 점령 뒤 망명해 미국에서 화재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