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필비를 포섭하고 케임브리지 첩보망을 만든 오스트리아 출신 소련 비합법 요원
1934년 런던에서 도이치는 갓 포섭한 필비에게 말했다. 겉보기에는 당신이 맞서려는 바로 그 계급의 평범한 일원이 되라고. 공산주의자와의 관계를 끊고, 나치 동조자 행세를 하라는 것이었다.
빈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24년 오스트리아 공산당에 입당했고, 1928년 빈 대학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민테른 연락부를 거쳐 소련 대외정보기관의 비합법 요원이 되었다. 1934년 영국에 들어가 런던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가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대학생을 미리 포섭하는 방식으로 킴 필비, 도널드 매클린, 가이 버지스를 끌어들였다. 1937년 소환되었으나 숙청을 피했고, 1942년 11월 7일 해외 임무로 향하던 유조선 돈바스호가 노르웨이해에서 독일 구축함에 격침될 때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이름: 아르놀드 도이치 · 슈테판 랑게
주요 활동과 소속
-
1924–
보안·정보·치안
-
1931–1942
보안·정보·치안
- 1932–1942
경력 연표
- 1924오스트리아 공산당 입당, 빈 대학 입학
- 1928–1932코민테른 국제연락부 연락원
- 1928.07빈 대학 화학 박사
- 1931소련 공산당 입당
- 1933모스크바 훈련 후 프랑스 파견
- 1934–1937.09영국 파견, 케임브리지 첩보망 구축
- 1934.10–1936.01런던 대학에서 심리학 대학원 과정
- 1937.09모스크바로 소환
- 1939–1941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 1942.11.07유조선 돈바스호 격침으로 사망
빈의 화학자는 어떻게 비합법 요원이 되었나?
도이치는 1904년 5월 21일 태어났다. 러시아어 자료는 빈에서 슬로바키아 출신 유대인 집안에 태어났다고 하고, 영어 자료는 빈 또는 뒷날의 체코슬로바키아 땅을 함께 꼽는다. 영화관 체인 오데온의 소유주 오스카 도이치가 그의 사촌이었다. 1924년 빈 대학에 들어가던 해 오스트리아 공산당에 입당했고, 1928년 7월 24살에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과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어 빌헬름 라이히의 성정치 운동에 관여했고, 라이히의 책을 낸 출판사를 운영했다.
졸업 뒤 그는 아내 요제피네와 함께 코민테른 국제연락부의 연락원이 되었고, 1932년 소련 대외정보기관으로 옮겼다. 1933년 1월 모스크바에서 훈련받은 그는 슈테판 랑게라는 이름과 ‘슈테판’이라는 암호명을 받았다.
그의 포섭 방식은 왜 새로웠나?
1934년 도이치는 실명으로 영국에 들어왔다. 학위가 진짜여야 했고, 사촌 오스카를 보증인으로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햄스테드의 아이소콘 건물에 살았다.
그의 새로움은 이미 요직에 있는 사람을 매수하지 않고 일류 대학의 급진적인 학생을 먼저 잡는 데 있었다. 그는 상부에 이렇게 보고했다. 공산주의자 학생은 많고 졸업으로 끊임없이 바뀌니 눈에 띄지 않게 고를 수 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자가 아닌 새 정치적 얼굴을 주면, 요직에 오른 뒤에는 과거의 좌파 활동이 젊은 날의 치기로 넘어간다.
1934년 여름 그는 에디트 수시츠키의 소개로 만난 킴 필비를 런던 리전트 공원에서 직접 포섭했다. 그해 도널드 매클린과 가이 버지스도 끌어들였다. 그는 영국에서 약 20명의 요원을 모았다고 하며, 1936년 4월부터는 테오도어 말리 아래에서 일했다. 울위치 조병창 첩보망을 운영한 퍼시 글레이딩의 연락책도 맡았다.
숙청을 넘긴 그는 어떻게 죽었나?
1937년 9월 도이치는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동료들이 총살되는 동안 그는 살아남았지만 11개월 동안 아무 일도 받지 못했다. 1938년 아내와 함께 소련 시민권을 받았고, 1939년부터 세계경제연구소에서 일했다.
1941년 11월 그는 비합법 거점장으로 임명되어 먼저 이란을 거치는 길로 떠났으나 일본의 참전으로 돌아와야 했다. 1942년 그가 탄 유조선 돈바스호는 북대서양 항로를 택했고, 11월 7일 노르웨이해에서 독일 구축함 Z-27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선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뱃머리의 포에서 포수처럼 싸우다 파편에 다리를 다친 뒤 바다로 사라졌다.
그의 최후가 정리된 것은 뒤늦은 일이다. 나치에 잡혀 총살되었다는 설처럼 서방에는 다른 이야기가 떠돌았고, 목적지도 러시아 자료의 아르헨티나와 KGB 문서를 인용한 뉴욕으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