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정찰사진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의 문을 연 사진판독의 대부
"내 생애 이보다 옳았으면 싶었던 적은 없다": 1962년 10월 15일, 쿠바 상공 U-2 사진에서 소련 미사일을 확인하며
시카고 출신의 지질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사진판독 장교로 경력을 시작했다. 1953년 CIA에 합류해 사진판독부를 이끌었고, 1961년 국가사진판독센터(NPIC)의 초대 소장이 되어 U-2 정찰기와 초기 정찰위성의 영상 분석을 총괄했다. 1962년 10월 15일, NPIC 분석관들이 쿠바 상공 U-2 사진에서 소련 SS-4 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를 식별했을 때 룬달이 직접 확인하고 '내 생애 이보다 옳았으면 싶었던 적은 없다'는 말과 함께 CIA 본부에 보고했으며, 다음 날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에게 이를 브리핑했다. 1973년 퇴임까지 NPIC를 이끌며 냉전기 미국의 영상정보 역량을 구축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3–1973 보안·정보·치안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39–1942시카고 대학 지질학 학사·석사
- 1942–1945미 해군 사진판독 장교
- 1946–1953해군사진판독센터 측량과장
- 1953–1961CIA 사진판독부장
- 1961–1973국가사진판독센터(NPIC) 초대 소장
- 1973국가안보훈장 수상 및 퇴임
관련 역사 사건
영상정보의 제도화, 1956~1960
룬달은 사진판독을 개인의 재주에서 조직적 방법으로 바꾸는 데 힘썼다. 그는 사진판독, 자동자료처리, 사진측량, 그래픽 아트, 통신, 부수자료 연구, 기술분석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NPIC에 통합했다. 그의 동료 디노 브루지오니에 따르면, 1956년 7월 4일 U-2 정찰기가 촬영 임무를 시작한 뒤 두 달 만에 이 조직은 정치권에서 제기되던 '폭격기 격차'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다. 룬달의 지휘 아래 판독된 영상은 1956년 수에즈 위기와 티베트, 중화인민공화국 연안 도서, 레바논 문제에서 정책 결정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으며, U-2 사진 분석으로 1956년 '폭격기 격차'와 1961년 '미사일 격차' 논란이 정리되었다.
1960년 8월 19일 룬달은 NPIC 직원을 모아 최초로 카메라를 장착하고 귀환한 정찰위성 디스커버러 14호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전에는 U-2가 찍은 좁은 띠 모양의 사진만 있었지만, 이번 단일 임무는 소련과 동유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여덟 개의 넓은 띠, 즉 해당 지역 전체 면적의 5분의 1 이상을 담았다. 일부 사진은 정전기 방전으로 흐려졌으나 해상도는 20~30피트로 '양호 내지 매우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성 정찰을 둘러싼 브리핑에서 룬달은 10피트 해상도 사진과 5피트 해상도 사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고, 퍼셀 위원회는 4~6피트 해상도의 새 탐색 시스템 개발이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룬달은 개별 판독 결과를 넘어 판독관과 기술, 위성을 결합한 상설 체계를 세움으로써 냉전기 미국 영상정보의 기초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