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공화국 금을 모스크바로 보낸 소련 무역대표
스타솁스키는 재무장관 네그린에게 모스크바에 '금 당좌계정'을 열자고 제안했고, 그 계정으로 무기와 원자재를 살 수 있다고 설득했다.
SDKPiL 출신의 소련 정보장교이자 무역 관료. 베를린에서 합동 레지덴투라를 지휘한 초기 군사정보의 핵심 인물로, 이후 토르그신 이사장과 대외무역 간부를 거쳐 1936년 공화파 스페인의 무역대표로 파견되었다. 스페인에서는 무기 판매 협상과 「작전 X」의 재정적 측면을 관리했으며, 후안 네그린에게 스페인 은행의 금을 소련에 예치하자고 설득한 인물로 지목된다. 1937년 6월 소환되어 두 달 뒤 처형되었고, 1956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1–1924 보안·정보·치안 · 소련 · 국가보안 기관
경력 연표
- 1921–1924베를린 합동 레지덴투라(INO·군사정보) 책임자
- 1925–1926소프토르그플로트 이사
- 1926–1932푸시노토르그·소유스푸시니나 부이사장
- 1932–1934토르그신 이사장
- 1934–1937대외무역인민위원부 글라프푸시니나 국장
- 1936–1937주스페인 소련 무역대표
관련 역사 사건
혁명 활동과 베를린 레지덴투라, 1905~1924
스타솁스키의 본래 성은 기르슈펠트였고, 베르홉스키와 스테파노프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짐나지를 네 학년까지 외부 시험으로 마친 뒤 1905년 폴란드 왕국·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SDKPiL)에 들어갔고, 1908년부터 1918년까지 망명 생활을 하며 파리(1909~1914)와 런던(1914~1917)의 공장에서 모피 염색공으로 일했다. 독일어·프랑스어·영어·폴란드어에 능통했다.
1918년 소비에트 러시아로 건너가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했다. 리투아니아 혁명정부의 임무를 받아 드빈스크·빌노·코브노에서 활동하다 독일에 체포되어 구축선 반대편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레포르토프 적군지휘관 학교를 마치고(1918년 5월~1919년 1월) 유격대 지휘관, 제4소총사단 여단 군사위원, 같은 사단의 위원을 지냈으며, 1919년 11월부터 1920년 4월까지 서부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정치부 첩보과장, 1920년 4~12월에는 같은 전선 사령부 등록(정보)과장을 아르투르 카를로비치 베르홉스키라는 이름으로 맡았다.
1921년 1월부터는 러시아연방 무역대표부 서기라는 표면 직함 아래 정보총국(라즈베두프르) 베를린 거점을 지휘했다. 그가 이끈 베를린 중심은 1920년대 초 소련 군사정보의 핵심 거점이었고, 스타솁스키는 이 시기 공적으로 적기훈장을 받은 최초의 군사정보 요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서부 유럽에서의 이 경험은 이후 그가 무역·외환 분야로 옮겨가서도 국외 거점을 운영하는 방식의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