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나푸 아바테

አጥናፉ አባተ

데르그의 마지막 독립 지도자

1977년 2월 3일 그는 수도 밖에서 민병 부대에 깃발을 수여하고 있었고, 관측자들은 그 일이 목숨을 구했다고 보았다. 11월 11일 데르그 본부에서 체포돼 이튿날 총살형에 처해졌다.

에티오피아 군인으로 1974년 황제를 축출한 군사위원회 데르그의 창설 세대다. 제4사단 소령으로 데르그 부의장에 선출됐고 1975년 4월 이후 중령이 됐다. 1976년 에리트레아 전선에 보낼 수만 명의 농민 민병 모집을 맡았고 보수적·민족주의적·종교적 성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977년 2월 3일 총격에서 살아남아 제1부의장이 됐으나 같은 해 11월 12일 멩기스투의 명령으로 처형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말년의 화해 노선과 처형을 둘러싼 해석

데르그 잔존 세력 가운데 멩기스투로부터 어느 정도 독자성을 유지한 마지막 인물이 된 뒤, 아바테의 정치 노선은 급진화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레네 라포르는 그를 두고 3년 반의 혁명이 그를 뼈만 남게 소모시켰다고 쓰면서, 단호한 자세를 보이던 인물이 이제는 그저 평화를 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평했다. 라포르에 따르면 그는 내부 화해, 곧 ‘백색 테러’와 ‘적색 테러’를 모두 끝낼 것,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당(EPRP)과 전에티오피아 사회주의 운동(MEISON) 양쪽에 손을 내밀 것,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잡힌 대외 관계를 가질 것(1977년 9월 무렵 미국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군대의 주요 요구를 충족시켜 군을 달랠 것을 주장했다.

아바테가 처형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공개적으로는 두 사람의 갈등이 극심해 그가 멩기스투의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아야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다수 연구자는 그가 1977년 2월 이후 마지막 경쟁자였으므로 제거가 불가피했다고 본다. 반면 라포르는 전년 말 민병 조직 책임자가 된 이래 아바테가 권력 경쟁을 사실상 포기하고 민병 모집·조직·훈련이라는 기술적 과제로 물러났으므로 더는 멩기스투에게 위협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멩기스투가 아바테의 죽음을 결정한 마지막 회의를 결정 전에 떠났고 자신이 위험해지지 않는 범위에서 그를 변호했다는 점을 들어, 이 처형을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쓸 희생물, 곧 데르그와 정규군, 그 안의 여러 파벌 사이에 도달한 타협의 대가로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 노선과 해석은 사료마다 다르게 평가되며, 처형 자체는 1977년 11월 12일 총살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