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초대 총리, 뒤에 극우 「철의 늑대」의 지도자
1928년 국민회의를 해산하자 그는 “선거를 약속했을 뿐, 언제 열지는 약속하지 않았다”고 농담했다.
1918년 11월 리투아니아 첫 내각의 총리 겸 외무장관이 되었고 이후 파리와 국제연맹에서 빌뉴스 문제를 다투었다. 1926년 쿠데타 뒤 다시 총리가 되어 극우 「철의 늑대」를 이끌다 스메토나와 갈라졌고, 1942년 소련 감옥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8–1920
리투아니아 국가기관총리·외무장관대표
정부·행정 -
1924–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10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역사·철학부 석사 학위 수여
- 1916페름 대학 교수, 국민진보당 입당
- 1918초대 총리 겸 외무장관 취임 (11월), 파리 강화회의 수석대표
- 1918–1920역대 내각에서 외무장관 역임
- 1926제3대 세이마스 의원, 12월 쿠데타 뒤 총리 겸 외무장관 복귀
- 1928독일과 국경 조약 체결, 극우 「철의 늑대」 실질 지도
- 1929스메토나 대통령에게 해임되어 유배
- 1934–1938쿠데타 미수 뒤 투옥, 1938년 프랑스로 추방
관련 역사 사건
혁명과 독립전쟁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고대사를 가르친 역사학자로 1917년 리투아니아 평의회에 들어가 1918년 11월 11일 첫 내각의 총리 겸 외무장관이 되었다. 「리투아니아에는 적이 없다」며 군대 창설을 늦추었다가 붉은 군대의 진입 앞에서 12월 사퇴했으나, 이후 외무장관으로 파리 강화회의와 국제연맹에서 빌뉴스 문제를 다투었다. 1926년 12월 쿠데타 뒤 다시 총리가 되어 1927년 의회를 해산하고 극우 조직 「철의 늑대」를 이끌었으나, 1929년 스메토나와 갈라져 해임되었고 1934년 쿠데타 시도로 투옥된 뒤 국외로 추방되었다. 1940년 소련 점령 직후 귀국하다 체포되었고 1942년 모스크바의 감옥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