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민병대를 관장한 부인민위원
1931년 야고다의 '베스나' 사건 조작에 항의했다 해고된 인물이, 6년 후 예조프 휘하에서 대숙청 트로이카를 조직했다.
체카 출신으로 1934년 소비에트 민병대 총국장, 1936년 예조프 휘하의 내무부인민위원이 되어 대숙청기 지방 트로이카를 조직했다. 1939년 체포돼 1941년 처형됐으며 복권되지 않았다.
경력 연표
- 1934–1936NKVD 노농민병대 총국장
- 1936–1938내무부인민위원
- 1938–1939철도 제1부인민위원
- 1939–1941체포,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체카에서 OGPU까지: 초기 경력과 '베스나' 항의
벨스키(본명 아브람 레빈)는 1918년 NKVD 조직국에서 체카 경력을 시작해, 곧 심비르스크 현 체카 의장으로 발령됐다. 남북전쟁기 동부전선·남부전선에서 복무했고, 1921년 탐보프 주 전권대표로 안토노프 봉기 진압에 관여했다. 이후 극동으로 이동해 1922년 블라디보스토크 해방 직후 수립된 프리모르스키 군사혁명위원회를 이끌며 이 지역 소비에트 권력 재편을 주도했다.
1923년부터 1930년까지 투르케스탄·중앙아시아 전권대표로 7년간 근무했으며, 이 시기 바스마치 운동 진압과 중앙아시아 소비에트화에 깊이 관여했다. 그 공로로 1927년 두 번째 적기훈장을 받았다. 1930년 모스크바 주 OGPU 전권대표로 전임됐다.
그러나 1931년 벨스키는 게리흐 야고다가 조작한 '베스나'(Весна, '봄') 사건에 항의하는 집단 서한에 참여했다가 해임됐다. 이 사건은 구 제국 장교 출신 적군 전문가들을 반혁명 음모 혐의로 체포·처형한 대규모 조작이었다. 벨스키를 포함한 일부 OGPU 간부들은 증거 부족을 들어 공개 반대했고, 야고다는 이들을 즉시 숙청했다.
해임된 벨스키는 1931년부터 1933년까지 공급인민위원부 산하 글라브나르피트에서 근무하며 체제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러나 1933년 야고다가 영향력을 다소 상실한 틈에 니콜라이 예조프의 후원으로 하볼가 지역 OGPU 전권대표로 복귀했고, 1934년 소비에트 민병대 총국장으로 발탁됐다. 불과 6년 전 '베스나' 조작에 항의했다 쫓겨난 인물이, 이제 예조프 휘하에서 대숙청의 핵심 집행자로 변모하는 아이러니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