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표도로비치 브랏첸코

Борис Фёдорович Братч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2–2004 ○ 자연사

브레즈네프 시대 20년간 소련 탄광을 이끈 석탄공업 장관

『나는 석탄공업을 사랑한다. 내 의식적인 삶 전부를 거기에 바쳤고, 다른 길은 상상할 수도 없다.』 — 브랏첸코, 2004년 마지막 인터뷰에서.

쿠반 카자크 후손으로 모스크바 광산대학을 졸업한 광산기사-경제학자로, 키젤·로스토프 탄광 갱도에서 출발해 카라간다 콤비나트 수석기사, 카자흐 공화국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을 거쳐 1965년 소련 석탄공업장관이 되었다. 1985년까지 20년간 재임하며 라스파드스카야·보르가쇼르스카야 탄광, 보가티리 노천광, 칸스크-아친스크·에키바스투스·남야쿠티아 연료에너지 콤플렉스 등을 진두지휘해 소련 석탄 생산량을 7억 1,800만 톤까지 끌어올렸다. 강력한 채탄기 개발로 1949년 스탈린상을 받았고 1982년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1971년부터 1986년까지 CPSU 중앙위원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시 철수와 돈바스 탄광의 복구

브랏첸코는 1942년 1월부터 로스토프우골 산하 샤흐탄트라치트 트러스트의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탄광장이었다. 독일군의 진격으로 점령이 임박하자 그는 1942년 7월 탄광 설비를 해체해 동쪽으로 보내고, 광산 노동자와 기술자들을 우랄·쿠즈바스·카라간다로 대피시키는 일을 지휘했다. 수송할 수 없는 설비는 적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갱구와 권양탑을 폭파했다. 1943년 9월 돈바스 해방 뒤 브랏첸코는 모스크바의 소브나르콤 사무국 근무에서 탄광 인민위원부로 복귀해, 자신이 철수 과정에서 파괴했던 바로 그 탄광의 복구를 맡았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침수된 갱도와 시설을 겨울철 자재 부족 속에서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그는 폭파된 권양탑의 구조재를 펴고 구부려 용접·리벳으로 다시 써 복구를 이끌었다. 복구와 동시에 작업장을 정비하고 채탄면을 준비해, 탄광은 한 달 만에 석탄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브랏첸코는 소련군의 날까지 두 번째 채탄면을 가동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이행했다. 이 복구로 첫 훈장을 받았으며, 1945년 1월 탄광장직에서 물러나 샤흐탄트라치트 트러스트 수석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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