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혁을 거부한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마지막 정통파 재무장관
협동조합원이 월 천 루블을 버는 현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나는 사회에 부자 계층이 생기면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모스크바 경공업기술대학을 졸업한 기술자 출신 경제 관료로, 신발 공장 기사에서 출발해 국가계획위원회와 당 중앙위원회 경제부서를 거쳐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신임으로 1985년 12월 소련 재무장관에 취임했다. 재임 4년간 반알코올 캠페인으로 인한 재정 악화, 급증하는 예산 적자, 협동조합 운동의 확산에 직면했으며, 시장개혁에는 일관되게 반대했다. 협동조합원의 고소득에 누진과세를 부과하며 '노동자가 거리로 나서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한 인물로, 사회주의적 평등을 훼손하는 부의 축적을 용납하지 않았다. 재임 중 오늘날의 예산·재무 아카데미인 재정실무자 연수원을 설립했고, 1989년 해임 후에는 그곳에서 교수로 13년간 후진을 양성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9–1966 경제·재정·계획 · 소련 · 경제 운영
경력 연표
- 1951–1959신발 공장 기사, 경공업부, 칼리닌 소브나르호스 노동임금 부장
- 1959–1966국가계획위원회, 국가과학경제위원회 부문 부장
- 1966–1975당 중앙위원회 계획·재정기관부 제1부장
- 1975–1982당 중앙위원회 계획·재정기관부장
- 1982–1985당 중앙위원회 경제부 제1부장 → 경제부장
- 1985.12–1989.6소련 재무장관
- 1989–2002재정실무자 연수원 교수
관련 역사 사건
재무장관 재임기, 시장개혁에 맞선 4년
고스테프는 1985년 12월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발탁으로 소련 재무장관에 올라 1989년 6월까지 재임했다. 그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재정·경제 메커니즘의 변경에는 찬성했으나 시장개혁에는 반대했다. 재임 중 그는 반알코올 캠페인이 초래한 재정 관리의 혼란과 커져 가는 국가예산 적자, 경제 개편기의 재정 운영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1987년의 은행 체계 개편이었다. 그는 이 개편을 무분별한 것으로 보았고, 그 결과를 완화하고 은행 간 거래를 조정하기 위해 은행평의회를 만들어 직접 이끌었다. 또한 보수와 사회보장을 위한 예산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조세 수입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그의 주요 과제였다.
그의 대표적 정치 노선은 협동조합 문제에서 드러났다. 역사학자 겔레르와 네크리치에 따르면, 그는 월 1000루블을 벌 수 있는 협동조합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월 200루블을 버는 평범한 노동자의 상황과 대조했고, 월 1000루블을 넘는 소득에 70퍼센트 이상의 세율을 매기는 것이 사회주의적 공정과 평등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사회에 부유층을 만들어 계급적 분화를 낳고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그를 시장개혁 노선의 정면 반대편에 세웠다. 러시아 언론은 그가 그의 후임 발렌틴 파블로프와 달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1989년 해임 뒤 7월부터 그는 전연방적 개인연금 수급자가 되었고, 그는 시장개혁 노선에 맞서 사회주의적 재분배 원칙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