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호트 2호의 우주유영을 가능케 한 팽창식 에어록 볼가의 수석 설계자
1965년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발사 때 접혀 있던 볼가 에어록이 궤도에서 부풀어 오른 뒤 그 문을 열고 우주로 나갔다.
보리스 미하일로프는 모스크바 근교 토밀리노의 제918공장(훗날 NPO 즈베즈다)에서 수석 설계자로 일하며 1964년 중반, 단 9개월 만에 팽창식 에어록 '볼가'를 설계·제작·시험한 인물이다. 보스호트 우주선에 금속제 에어록을 탑재할 공간이 없었기에, 발사 시에는 접혀 있다가 궤도에서 부풀어 오르는 그의 유연 구조물 설계가 유일한 해법이었다. 1965년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바로 이 에어록을 통해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걸어 나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4–1965제918공장(즈베즈다) 수석 설계자, 팽창식 에어록 '볼가' 개발
관련 역사 사건
팽창식 에어록 '볼가'의 설계
보스호트 2호의 우주유영은 단순히 용감한 우주비행사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금속 구조물이라는 우주공학의 상식을 뒤집은 설계 문제였다. 소련 측은 미국의 제미니 계획처럼 선실 전체를 감압하는 방식 대신, 별도의 에어록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선실을 통째로 감압하면 진공 속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온갖 기기를 통째로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에어록을 어디에 싣느냐였다. 사람이 겨우 들어설 크기의 금속 원통은 로켓의 페어링 안에 넣을 수 없었다.
그 해법이 바로 접히는 '유연 구조물'이었다. 모스크바 근교 토밀리노의 제918공장(훗날 NPO 즈베즈다)에서 설계된 에어록 '볼가'는 발사 때 직경 1.2미터, 길이 74cm로 접혀 스푸트니크의 3번 해치 위에 얹혔다가, 궤도에 오른 뒤 압축공기로 부풀어 길이 2.5미터의 통로가 되는 구조였다. 중간의 유연한 몸체는 고무를 입힌 이중막과, 세 개의 독립 구획으로 묶인 40개의 원통형 공기보 '두티키'가 지탱했다. 한 구획에 구멍이 나도 나머지가 형체를 유지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금속제 에어록이라는 기존 발상을 버린 덕분에 우주선 본체와 발사체 페어링을 거의 손대지 않고도 우주유영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 설계는 1898년 이미 '우주로의 길'에서 슐류즈(에어록)를 통한 외계 진출을 그림으로 남긴 치올콥스키의 구상과 닿아 있었다. 코롤료프가 늘 '치올콥스키를 읽으라'고 엔지니어들에게 권한 이유이기도 하다. '볼가'는 1964년 중반부터 불과 9개월 만에 설계·제작·시험을 끝냈고, 1965년 2월 22일 무인 시험선 코스모스 57호에서 기밀 성능을 검증받았다. 귀환 중 자폭으로 우주선을 잃는 사고가 있었지만 에어록 자체는 임무를 완수했고, 한 달 뒤인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바로 이 통로를 통해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걸어 나갔다. 임무를 마친 에어록은 귀환 전에 분리·폐기되었다. 총 7세트가 제작된 '볼가' 중 비행하지 않은 표본은 오늘날 NPO 즈베즈다와 RKK 에네르기아, 모스크바 우주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