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유전을 일군 체르노빌 사령관
1986년 4월 27일 오전 10시, 프리피야티에서 정부위원회를 소집한 셰르비나는 단 한 마디로 회의를 열었다. '피난을 시작한다.' 사고 32시간 만에 5만 명의 도시 전체가 버스에 올랐다.
소련을 세계 1위 탄화수소 생산국으로 만든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단지의 설계자. 튜멘주 당서기와 석유가스건설장관으로서 타이가와 영구동토를 뚫고 송유관·도시·철도를 건설했으며, 부총리로서 체르노빌 사고(1986)와 아르메니아 지진(1988) 정부대책위원회를 직접 지휘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건강 악화 속에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은 기술관료였다.
경력 연표
- 1939소련-핀란드 전쟁 자원입대 (제316스키대대)
- 1942–1944하리코프주 콤소몰 서기
- 1951–1961이르쿠츠크주 당서기 → 제2서기
- 1961–1973튜멘주 당 제1서기
- 1973–1984소련 석유·가스공업 건설장관
- 1984–1989소련 각료회의 부의장 (에너지 부문 총괄)
- 1986체르노빌 사고 정부대책위원장
- 1988아르메니아 지진 구호위원장
관련 역사 사건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단지의 설계자
1961년 튜멘주 당 제1서기로 부임한 셰르비나는 불과 6개월 만에 중앙에 보고서를 올려 서시베리아의 석유·가스 잠재력을 역설했다. 당시까지 확인된 매장량은 현재 알려진 것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쳤으나, 셰르비나는 "타이가 아래 바다가 있다"고 확신했다. 1962년 각료회의는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탐사 확대 조치」를 채택했고, 이후 10년간 샤임·메기온·사모틀로르 등 유전이 연이어 발견되었다. 1964년 21만 톤이던 튜멘주의 원유 생산량은 1973년 8,800만 톤으로 폭증했고, 천연가스 생산도 1966년 첫 송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셰르비나는 단순한 당 간부가 아니었다. 영구동토와 늪지를 뚫고 송유관을 깔고, 타이가 한가운데 수르구트·니즈네바르톱스크 같은 도시를 세우며, 튜멘-수르구트 철도를 놓고 비행장을 곳곳에 건설했다. 콤소몰을 동원해 청년들을 유치하고, 주택·학교·병원을 병행 건설해 노동자들이 정착할 수 있게 했다. 1970년에는 『소비에츠카야 로시야』 지상을 통해 사모틀로르 유전의 추정 매장량을 공개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이 유전은 훗날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로 확인된다.
1973년 석유·가스공업 건설장관으로 승진한 뒤에도 셰르비나는 시베리아 현장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우렌고이-포마리-우주고로드 파이프라인(서시베리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국경까지 4,500km)을 예정보다 앞당겨 완공해 1983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취임 당시 소련의 탄화수소 생산량은 미국에 뒤처졌으나, 그가 물러날 무렵 소련은 세계 1위 산유국이자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되어 있었다. 역사가 유리 프리빌스키는 그를 두고 "젊고 매력적이며 상식에 충실하고 혁신 정신에 사로잡힌 지도자"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