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아르카디예비치 야르체프

Борис Аркадьевич Рыбк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1899–1947 ✕ 의문의 교통사고사

정보관의 얼굴로 수행한 위험한 외교

그는 1938년 4월 핀란드 측에 독일이 핀란드를 거쳐 레닌그라드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리스 아르카디예비치 리브킨은 야르체프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소련의 정보관이자 외교관이었다. 1938년 그는 핀란드에 대한 독일의 위협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비밀 협상을 시작했지만, 영토 교환 요구는 합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실패한 접촉은 협상과 안보 불신이 얽힌 채 겨울전쟁으로 향하던 소련·핀란드 관계의 첫 단계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야르체프 밀사 협상(1938)

1938년 봄, 오스트리아 병합 직후 소련 지도부는 독일의 침략 위협에 대비해 북서쪽 접근로를 확보할 필요를 느꼈다.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 헬싱키 주재 공관의 2등 서기관으로 위장해 있던 보리스 리브킨, 즉 '야르체프'였다. 1938년 4월 7일 스탈린은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 직접 지시를 내렸고, 협상은 스탈린 자신의 표현대로 '엄격히 비밀'로 진행되었다. 사료에서는 이 일련의 접촉을 '4월 7일 사건'으로 부른다. 야르체프는 1938년 4월 14일 외무장관 루돌프 홀스티를 시작으로 총리와 재무장관 배이뇌 탄네르 등 소수의 핀란드 고위 인사들과 접촉했다. 그는 독일이 핀란드를 경유해 레닌그라드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소련이 카렐리야 지협의 국경을 레닌그라드에서 멀리 옮기는 대가로 더 넓은 자국 영토를 양보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고, 독일이 핀란드 영토를 거점으로 삼을 경우 핀란드가 이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핀란드 측은 중립 정책을 명분으로 어떤 영토 교환도 수용하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듬해 1939년 3월 후임자 보리스 시테인이 이어받은 접촉마저 결실 없이 끝났고, 소련은 같은 해 가을의 공식 협상과 겨울전쟁으로 나아갔다. 야르체프의 임무는 상대의 속내를 타진하는 정지 작업으로서는 성공했지만 그 목적 자체는 달성하지 못했으며, 이 실패한 밀사 외교는 두 나라 사이에 쌓인 불신이 유혈 충돌로 전환되는 전초의 성격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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