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쇼를레머

Carl Schorlemmer

파라핀 연구로 유기화학의 기틀을 놓은 맨체스터의 「붉은 화학자」

다름슈타트의 목수 아들로 태어나 십 대에 1848~1849년 바덴 혁명에 참여했다. 약제사 수련 뒤 분젠의 강의를 듣고 화학으로 돌아섰고, 1859년 맨체스터로 건너가 오언스 칼리지에서 일했다. 파라핀(알케인) 계열을 체계적으로 밝혀 1874년 유기화학 교수가 되었고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다. 마르크스·엥겔스와 가까운 벗으로 그들에게 자연과학을 조언했고, 1889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마르크스·엥겔스와의 우정

쇼를레머는 늦어도 1865년 3월 맨체스터에서 엥겔스를 만났고 1868년 마르크스와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자연과학 문제를 그에게 물었고, 화학사를 사회의 발전과 엮어 본 그의 분석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관한 그들의 견해에 영향을 주었다. 독일에 가지 않는 휴가는 런던의 마르크스·엥겔스 곁에서 보냈고, 1883년 마르크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열세 명 가운데 하나였다.

1892년 그가 맨체스터에서 폐병으로 죽자 엥겔스는 《포어베르츠》에 부고를 써서, 그가 공산주의자임을 숨기지 않았고 헤겔이 「몹시 멸시받던」 시절에 헤겔을 높이 샀으며, 오늘날 파라핀에 관한 지식은 주로 그의 덕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