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말 양광총독을 지내고 광저우 군정부 총재회의를 이끈 좡족 관료
1861년 광시성 시린에서 윈구이 총독 천위잉의 아들로 태어난 좡족이다. 1900년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시안으로 피란한 서태후를 호위해 신임을 얻었다. 1903년 양광총독이 되어 부패 관리를 잇달아 탄핵하고 입헌군주제와 과거제 폐지를 상주해 입헌 운동의 지도자로 떠올랐으나, 1907년 경친왕·위안스카이와의 정쟁에서 밀려 면직되었다. 1916년 량치차오·루룽팅과 자오칭에서 호국군 군정부를 세우고 총사령이 되어 황제를 칭한 위안스카이에 맞섰다. 1918년 광저우 호법군정부가 총재 7인의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뀌자 주석총재가 되었으나, 1920년 군정부가 무너지자 물러나 상하이에서 은거하다 1933년 죽었다.
다른 이름: 잠춘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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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907
청 왕조 국가기관양광총독
정부·행정 -
1918–1920
중화민국 국가기관군정부 주석총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98광둥 포정사
- 1900서태후의 시안 피란을 호위, 순무로 승진
- 1902쓰촨 총독 대리
- 1903–1907양광총독
- 1907우전부 상서, 이어 면직
- 1913.07.172차 혁명에서 혁명파의 대원수로 추대
- 1916.04.19자오칭 호국군 군정부 수립, 호국군 총사령
- 1918.07.05–1920.10.24호법군정부 주석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