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를 소총으로 바꾼 국제주의 혁명의 아이콘
“둘, 셋, 더 많은 베트남을 만들어라.” — 삼대륙회의에 보낸 메시지(1967)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쿠바 혁명의 게릴라 사령관으로서 1959년 바티스타 정권 전복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후 국제 혁명 투쟁에 투신,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을 이끌다 1967년 체포·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 1948–1953의대생 — 라틴아메리카 종단 여행
- 1955멕시코에서 카스트로와 만남, 7·26 운동 합류
- 1956–1959쿠바 게릴라전 사령관 — 산타클라라 함락
- 1959–1965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 1960《게릴라전》 출간
- 1965–1967콩고·볼리비아 게릴라전
- 1965논문 《쿠바에서의 사회주의와 인간》 발표
- 1967.10볼리비아에서 생포, 이튿날 총살
관련 역사 사건
볼리비아, 마지막 11개월 — "둘, 셋, 더 많은 베트남을"
1965년 체는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쿠바를 떠났다. 피델에게 남긴 고별 편지에서 "다른 산들이 이 투쟁을 부르고 있다"고 썼다. 콩고에서 7개월간 게릴라전을 시도했으나 실패.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1966년 11월, 위장 신분으로 볼리비아에 잠입했다. 47명의 빈약한 부대를 이끌고 안데스 산기슭에서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볼리비아 공산당의 지원을 얻지 못했고, 농민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CIA는 쿠바 출신 요원을 포함한 추격팀을 꾸렸다.
1967년 4월, 삼대륙회의에 보낸 메시지에서 "둘, 셋, 더 많은 베트남을 만들어라"고 호소했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답은 세계 곳곳에 동시다발적 베트남을 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메시지는 그의 유언장이 되었다.
1967년 10월 8일, 부대는 라이게라 협곡에서 매복에 걸렸다. 체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생포되었다. 다음 날 아침, 라이게라 마을 학교에서 "쏴, 겁쟁이야, 당신이 죽이는 것은 한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전언과 함께 총살되었다. 나이 39세.
죽음의 사진은 우연히도 예수의 시신을 닮은 구도로 세계에 퍼졌고, 그가 두려워했던 아이콘화가 역설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볼리비아 일기'는 그의 배낭에서 발견되어 출판되었다. 마지막 일기는 10월 7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