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우스티노비치 체르넨코

Константин Устинович Черненко
소련 러시아 1911–1985 ○ 자연사

브레즈네프 체제의 마지막 서기장

1985년 2월, 병상에서 투표용지를 받아든 최초의 서기장 — 선거운동도, 연설도 없는 승리

브레즈네프의 비서 출신으로 안드로포프 사후 서기장이 되었지만, 건강 악화로 통치 능력은 제한적이었다. 그의 짧은 집권은 고르바초프 등장의 막간이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브레즈네프의 그림자 — 30년의 비상

콘스탄틴 체르넨코는 시베리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국경수비대에서 복무한 후, 크라스노야르스크와 펜자에서 당 선전가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1948년 몰다비아 전출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몰다비아 공산당 제1서기였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만났다. 업무 관계는 곧 평생의 우정으로 바뀌었고, 1950년 이후 체르넨코의 경력은 브레즈네프의 경력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1965년, 권력을 잡은 브레즈네프는 체르넨코를 중앙위원회 총무부장에 임명했다. 그 후 17년간 체르넨코는 서기장에게 들어오는 모든 서류를 통제하고, 정치국 회의 안건을 준비했으며, 서기장 이름으로 발신될 답변을 초안했다. 지역 당 지도자들은 알고 있었다: 체르넨코를 거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그는 브레즈네프의 '오르고비크(조직 전문가)'였고,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체제의 신경계를 움직인 실무자였다.

1976년 중앙위원회 서기, 1977년 정치국 후보위원, 1978년 정위원: 체르넨코는 브레즈네프 후계 구도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982년 브레즈네프 사망 후 정치국은 개혁파 안드로포프를 선택했다. 체르넨코는 두 번째 자리로 물러났지만, 그 자신이 안드로포프의 후보를 추천하는 연설을 했다. 안드로포프가 불과 15개월 만에 사망하자, 두려움에 떨던 브레즈네프 구세대는 마지막 선택을 했다: 72세의 병든 체르넨코였다. 그는 아무것도 찬탈하지 않았다. 체제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과거를 선택한 것이다.

13개월, 제국의 마지막 숨결

1984년 2월, 콘스탄틴 체르넨코는 72세의 나이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그보다 더 늙고 병든 후계자는 없었다. 폐기종을 앓고 있었고, 정치국 회의도 주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의 승진은 이념이나 비전 덕분이 아니었다. 단지 구 세대가 다른 구 세대를 선택했을 뿐이다.

체르넨코의 13개월 통치는 브레즈네프 시대의 마지막 잔영이었다. 그의 유일한 주요 결정은 스탈린의 후계자 몰로토프를 당에 복권시킨 것이다: 96세의 몰로토프는 1957년 이후 처음으로 크렘린에 발을 들였다. 역사는 앞으로 가는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체르넨코 사망 후, 정치국은 더 이상 늙은 간부를 뽑지 않았다. 54세의 고르바초프가 선출되었고, 6년 안에 소련은 사라졌다. 체르넨코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바로 그래서 그의 짧은 통치는 체제의 종말적인 정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85년 2월, 투표소로 꾸민 병실

1984년 말부터 체르넨코는 사실상 병원에서 통치했다. 폐기종으로 숨쉬기조차 버거운 서기장을 대신해 정치국 회의는 고르바초프가 주재하는 날이 많아졌고, 크렘린 안에서는 이미 다음을 준비하는 물밑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85년 2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선거일, 텔레비전은 체르넨코의 투표 장면을 내보냈다. 화면 속 투표소는 사실 투표함을 들여놓고 꾸민 병실이었고, 그를 부축해 세운 것은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 그리신이었다. 지도자의 건재를 증명하려던 연출은 정반대로 읽혔다. 시청자들이 본 것은 서 있기도 힘든 노인이었고, 세 번째 국장을 예감한 나라의 피로였다.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에 이어 28개월 사이 세 번째였다.

3월 10일 저녁 그가 죽자 정치국은 그날 밤으로 모였고, 다음 날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었다. 노인 지배의 시대는 이 마지막 연출과 함께 끝났다. 체르넨코의 13개월은 흔히 조롱과 함께 회고되지만, 바로 그 무력함이 세대교체의 합의를 무르익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본의 아니게 페레스트로이카의 산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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