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캄포아모르

Clara Campoamor
스페인 공화파 국가기관 자유주의·공화주의 스페인 스페인 1888–1972 → 망명지에서 사망

1931년 제헌의회에서 여성 참정권을 관철한 변호사·의원

1931년 10월 1일 제헌의회 토론에서 빅토리아 켄트를 누르고 여성 참정권을 담은 헌법 제36조를 161대 121로 통과시켰다.

마드리드의 재봉사 집안에서 태어나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일하며 공부한 변호사·작가·정치가. 1925년 마드리드 변호사회의 두 번째 여성 회원이 되었다. 1931년 급진당 소속으로 제헌의회 의원이 되어 헌법 기초에 참여했고, 10월 1일 여성 참정권을 관철했다. 1932년 이혼법 작성에도 깊이 관여했고 성매매 폐지론을 폈다. 1933년 낙선한 뒤 1934년 사회복지 총국장을 지냈고, 1935년 급진당을 떠났다. 내전이 터지자 스위스로 망명해 1972년 로잔에서 숨졌다.

다른 이름: 카르멘 에울랄리아 캄포아모르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여성 참정권과 이혼법

마드리드에서 재봉사 필라르 로드리게스와 신문사 회계원 마누엘 캄포아모르의 딸로 태어나 카르멘 에울랄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898년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재봉사, 점원, 전화 교환원으로 일했고, 1909년 체신 보조원 시험에 붙었으며 1914년 교육부 시험에 1등으로 합격해 성인 여성 학교의 속기·타자 교사가 되었다. 1925년 빅토리아 켄트에 이어 마드리드 변호사회의 두 번째 여성 회원이 되었고, 대법원에서 변론한 첫 여성 변호사, 마드리드 아테네오 이사회에 든 첫 여성이 되었다.

1931년 「공화주의적·자유주의적·세속적·민주적」을 내건 급진당 소속으로 마드리드에서 제헌의회 의원에 뽑혔다. 당시 여성은 피선거권만 있고 투표권은 없었다. 헌법 기초에 참여한 그는 여성 참정권을 놓고 여성이 우파에 투표할 것을 걱정한 급진사회당 의원 빅토리아 켄트와 맞섰고, 1931년 10월 1일 마지막 토론에서 이겨 헌법 제36조가 161대 121로 통과되었다. 사회노동당 대부분이 찬성했지만 그의 급진당은 네 명을 빼고 반대했다. 그는 11월 「공화주의 여성 연합」을 세웠고, 1932년 이혼법 작성에 깊이 관여했으며, 의회에서 남녀평등을 위해 성매매 폐지론을 폈다.

1933년 그와 켄트 모두 낙선했다. 레루의 급진당 정부에서 1934년 5월 사회복지 총국장으로 시각장애인 직업 알선과 노령 연금을 마련했으나, 1935년 2월 23일 급진당이 스페인 우익 연합(CEDA)에 굽히고 아스투리아스 봉기를 지나치게 탄압하는 데 반발해 탈당했다. 좌파 공화당 가입은 거절당했고, 1936년 5월 『나의 대죄: 여성 투표와 나』를 냈다. 내전이 터지자 공화파 후방의 혁명적 폭력을 두려워해 로잔으로 망명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로잔으로 돌아가 1972년 4월 30일 숨졌다. 프랑코 정권은 프리메이슨 혐의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