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과 국제기구를 밀어붙인 미국 외교가
1941년 11월 26일, 그는 일본 대사에게 「미일 간 합의의 기초로 제안된 개요」를 전달했다.
코델 헐은 미국의 자유무역과 다자적 국제질서를 설계한 민주당 정치가이자 외교가였다. 그는 1930년대 무역장벽 완화와 선린정책을 추진했지만, 외교정책의 최종 결정권을 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자주 긴장했다. 1941년 일본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정리한 11월 26일 합의안 개요를 전달했으며, 이는 전쟁 직전 외교의 마지막 문서가 되었다. 전후에는 국제연합 창설을 이끈 공로로 1945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3–1944 외교·국제활동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893–1897테네시주 하원의원
- 1907–1921미국 연방 하원의원
- 1921–1924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 1923–1931미국 연방 하원의원
- 1931–1933테네시주 연방 상원의원
- 1933–1944미국 국무장관
- 1945국제연합 샌프란시스코 회의 대표
관련 역사 사건
상호무역협정과 보호주의 대응
코델 헐은 국무장관 재임 중 관세 인하를 정면으로 내건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관세율을 끌어올려 국제무역을 급감시킨 데 대한 저관세 민주당의 대응으로 상호무역협정을 밀어붙였고, 1934년 6월 12일 성립한 상호관세법(RTAA)은 대통령에게 최대 50%까지 상호 관세 인하를 협상할 권한을 부여했다. 이 법의 골자는 관세 인하를 상대국의 대응 인하와 맞물리게 하고, 상원의 조약 비준에 필요한 3분의 2가 아니라 양원 단순 다수결로 처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의회의 관세 결정권 일부를 행정부로 넘긴 것이었다. 어느 대통령이 협상하든 의회보다 관세 인하에 기울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그 자체로 논쟁거리였다.
헐은 이 협정들을 단순한 통상 실무가 아니라 전쟁을 막는 수단으로 이해했다. 그는 '전쟁의 나이아가라'가 밀려온다고 보면서 그 원인을 세계적 무역전쟁에서 찾았고, 1932년 오타와 협정이 세운 영국 제국특혜관세를 국제 경제·정치 불안정의 주된 근원으로 지목했다. 1936년 1월에는 영국 대사 로널드 린지에게 제국특혜 체제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불러왔고 세계 무역전쟁이 계속되면 독일이 이웃을 침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시즘을 자원 빈곤에 대한 반발로 읽고, 보호주의를 끝내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팽창할 이유가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한계도 있었다. 그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논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고, 재무장관 헨리 모건소 주니어는 그가 파시즘 앞에서 무역협정에 집착해 시야가 좁다고 비판했다.
성과는 수치로 남았다. 1934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은 27개국과 32건의 상호무역협정을 맺었고, 관세 인하 권한은 1937·1940·1943·1945년에 연장되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성립의 근거가 되었다. 미국의 외국산 제품 평균 관세는 1934년 46%에서 1962년 12%로 떨어졌다. 다만 협정 대상은 초기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치우쳤고, 이 권한은 1948년과 1950년대에 여러 차례 실효와 연장을 되풀이했다. 1961년 관세 인하 권한이 만료된 뒤에는 1962년 무역확대법과 케네디 라운드로 이어졌다. 헐의 상호무역 체계는 오늘날 자유무역 질서의 출발점으로 평가되지만, 당대에는 나치 독일 앞에서 무역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가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