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화

邓华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주의 중국 중국인 1910–1980 ○ 자연사

전쟁의 흐름을 읽은 야전 지휘관

그는 아내에게 “장군은 전장에서 죽는 법”이라고 남기고 북쪽으로 떠났다.

덩화는 중국공산당 혁명과 국공내전을 거치며 대규모 부대를 지휘한 인민해방군 장군이었다. 1950년에는 동북변방군의 편성과 훈련을 맡아 압록강을 건널 부대를 실제로 준비했고, 조선전쟁에서 펑더화이의 제1부사령관으로 전쟁 수행을 뒷받침했다. 1952년부터는 중국인민지원군을 지휘하며 전선의 작전과 정전 국면을 이끌었다. 훗날 펑더화이와의 연좌로 실각했지만 1980년 명예를 회복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0년: 해남도 전역과 최초의 대규모 상륙 작전

1949년 12월, 10월 광저우 함락으로 광둥 전역을 마친 덩화는 제15병단 사령관으로서 해남도 전역 지휘를 위임받았다. 같은 달 마오쩌둥은 제4야전군에 43군과 40군으로 경애(琼崖)를 공격하라고 지시하면서, 해상 작전은 기존의 모든 작전 경험과 전혀 다르므로 조수와 풍향을 살피고 한 번에 최소 한 개 군의 병력을 수송할 선박을 확보하라고 요구했고, 한 달 전 금문도 상륙 실패를 거듭 언급하며 그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했다. 임무를 넘겨받은 덩화는 1950년 1월 초부터 뇌주반도에서 선박 징발과 선원·어민 동원, 목선 함대 편성, 선원 훈련을 조직했다.

덩화와 참모진이 세운 전제는 해군·공군의 엄호 없이 목범선으로 경주해협을 건넌다는 것이었다. 정찰과 시험 항해 끝에 그는 선박 일부에 기관을 달아 기동력을 확보하고, 야간에 소규모 부대를 적은 앞바다에 먼저 상륙시킨 뒤 본대를 대규모로 밀어 넣는 방법을 택했다. 1950년 3월 제15병단 예하 부대들은 야간 항해로 여러 차례 해협을 건너 섬 안에서 경애종대와 합류했다. 선두 부대는 순풍이 끊겨 노와 삿대로 19시간을 저어 섬에 닿았고, 다른 부대는 국민당군 군함과 두 시간 넘게 교전한 끝에 새벽에 상륙했으며, 한개 중대는 함대 엄호 임무를 마친 뒤 목표를 벗어나 고립된 여울에 상륙해 4월 1일 괴멸되기도 했다. 앞서 상륙한 병력이 섬 안에 발판을 만들자, 덩화는 다수의 목선을 기범선으로 개조한다는 계획을 버리고 대형 범선 위주의 대규모 상륙으로 방침을 바꿨다.

1950년 4월 16일 밤 제40군과 제43군의 제1제대가 먼저 출발하고 4월 23일 제2제대가 뒤따라 해협을 건넜다. 국민당군의 공군과 해군이 해상을 봉쇄하며 수송선을 격침했고, 이 항해 단계에서 적측 사상자의 상당수가 발생했지만 상륙 부대는 해안 거점을 확보한 뒤 내륙으로 나아가 유격대와 합류했다. 4월 23일 하이커우가 함락되고 5월 1일 전 섬이 장악되었으며, 남쪽에서는 국민당군과 피난민이 빠져나갔다. 20여 년간 외부 지원 없이 싸워 온 해남도의 공산주의 운동은 이 전역을 자신들이 벌인 전쟁의 정점으로 보았다. 이후의 전사 서술은 제15병단의 작전을 부각한 반면 섬 안 공산주의자들의 역할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1950년 7월 덩화는 동북변방군 조직 임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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