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VD 내부 음모' 이야기를 처음 풀어놓은 스베르들롭스크 NKVD 국장
명령 제00447호가 스베르들롭스크주에 준 한도는 1범주 4천 명, 2범주 6천 명이었다. 그러나 1937년 12월 11일 자 그의 보고서는 작전 종료를 이렇게 명시했다. '반소비에트 분자에 대해 1만 5천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중 1번째 범주로 7500명...'
체카와 OGPU 중앙 기구에서 경력을 쌓고 1936년 여름 스베르들롭스크주 NKVD 국장이 된 체키스트로, 나우모프는 그를 류시코프, 레덴스와 함께 '북캅카스 출신자' 집단으로 분류한다. 쿨라크 작전에서 정치국의 서면 승인 없이 한도 증액을 관철한 지도자 가운데 하나로, 명령 제00447호가 준 한도 1만 명을 훌쩍 넘겨 1만 5천 명 유죄 판결로 작전 종료를 보고했다. 1938년 도로건설총국장으로 소환되었다가 6월 체포되었고, 10월 22일 'NKVD 내부의 공모'에 대한 상세한 진술로 공모 사건의 실을 처음 풀었으며 1939년 총살됐다.
경력 연표
- 1920–1936체카·OGPU 요원, 중앙 기구 근무
- 1936–1938스베르들롭스크주 NKVD 국장
- 1937한도 초과 집행, 1만 5천 명 유죄 판결 보고
- 1938도로건설총국장으로 소환, 6월 체포
- 193810월, 'NKVD 내부 공모' 진술
- 1939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