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숴야 할 것은 부숴야 한다고 선언한 러시아 허무주의의 기수
「우리 진영의 최후통첩은 이것이다: 부술 수 있는 것은 부숴야 한다. 타격을 견디는 것은 살아남을 자격이 있고, 산산조각 나는 것은 쓰레기다. 어쨌든 좌우로 내리쳐라, 거기서 해는 나오지 않는다.」 — 『19세기 스콜라철학』(1861)
러시아 허무주의(nihilism)의 중심 이론가이자 1860년대 혁명적 민주주의 문학비평의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 체르니솁스키·도브롤류보프와 함께 60년대 급진 지식인을 대표했으며, 『러시아어』(Русское слово)의 주필로서 미학과 관념론 철학을 공격하고 자연과학에 기초한 '현실주의'를 주창했다. 1862년 반정부 선언문 필화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수감되어 4년 반 동안 주요 저작 대부분을 감옥에서 집필했고, 석방 2년 뒤 27세에 발트해에서 익사했다. '합리적 이기주의'와 '사고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으로 나로드니키 세대를 예비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라스콜니코프, 파블로프의 과학관, 레닌의 지적 형성에 결정적 흔적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58–1861여성잡지 『라스베트』(Рассвет) 서평 기고
- 1860–1862『러시아어』(Русское слово) 비평가·사실상의 주필
- 1862–1866반정부 선언문 필화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수감, 옥중 집필
- 1866–1868『델로』(Дело)·『조국의 수기』(Отечественные записки) 기고
바자로프와 ‘현실비평’
1862년 피사레프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평론 「바자로프」에서 허무주의자 바자로프를 당대 젊은 세대의 대표적 유형으로 읽었다. 그는 소설의 인물을 현실에 흩어져 있는 사회적 성격의 집약으로 보았고, 이 관점은 도브롤류보프의 ‘현실비평’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피사레프에게 바자로프는 이성과 경험적 지식에 기대고 전통적 가치의 권위를 거부하는 인물이었다. 피사레프는 문학을 자율적 미의 영역으로 보기보다 현실을 묘사하고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활동으로 이해했다. 1864년 「현실주의자들」 등에서 미학주의와 ‘예술을 위한 예술’을 비판하고 문학을 저널리즘 및 학문적 탐구에 결합시키려 한 것도 이 입장과 이어졌다. 이 비평은 바자로프를 급진적 젊은 지식인의 상징으로 널리 읽히게 했지만, 소설 속 인물의 도덕관을 긍정하는 것과 동일하지는 않았다. 피사레프의 해석에서 바자로프는 도덕률을 구속력 있는 규범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의지와 개인적 판단으로 행동하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