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에 전시 전력장관이 된 소비에트 전기화의 기수
베리야가 모스크바 대정전 책임자를 향해 권총을 겨누자, 지메린은 그 앞을 몸으로 막으며 말했다. «쏘시오, 그는 잘못이 없습니다!»
소비에트 전력화의 핵심 인물로, 1942년 35세의 나이로 전력인민위원에 임명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전소 대피와 복구를 지휘했다. 1948년 모스크바 대정전 당시 베리야의 권총 위협에도 부하를 몸으로 감싸며 맞섰고, 흐루쇼프의 1955년 고스플란 분할 개혁기에는 제1부의장으로서 장기계획 체계 전환에 참여했다. 은퇴 후 국립 에너지연구소장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제1부의장을 지내며 소련 에너지 과학의 제도화에 기여했고, 소련 전기화 역사에 관한 표준적 저작을 남겼다.
경력 연표
- 1939–1940남부지역 발전소·전력망 총관리국 수석기사·국장
- 1940–1941전력인민위원부 제1부인민위원
- 1942–1953전력인민위원 · 전력장관
- 1954–1955각료회의 화학·에너지 담당 뷰로 제1부의장
- 1955–1957고스플란 제1부의장 (장기계획·현행계획 분할기)
- 1964–1971국립 크르지자놉스키 에너지연구소장
- 1971–1983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제1부의장
1948년 모스크바 대정전과 베리야와의 대치
1948년 12월 18일 저녁, 모스크바 전역에서 전력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통이 멈추고 크렘린궁의 전력 공급마저 끊겼다. 지메린은 급히 라우시스카야 제방의 모스크바전력공사(Мосэнерго) 중앙통제소로 달려갔다.
곧이어 라브렌티 베리야도 도착했다. 베리야는 고성을 지르며 책임자를 추궁했고, 지메린은 "왜 국가보안기관은 크렘린 예비전력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되물으며 베리야의 위협을 받아넘겼다.
다음날 베리야는 자신의 사무실로 모스크바전력공사 책임자 미하일 우파예프를 불러들여 권총을 빼들고 "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지메린은 우파예프 앞을 자기 몸으로 막아서며 베리야의 얼굴에 대고 말했다. "쏘시오, 그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 대치는 스탈린 시대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남았다. 지메린은 전력 공급의 기술적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경찰 수장 앞에서도 부하를 감싼 유일한 장관급 인사로 기록되었다. 사고 원인은 변전소 절연체의 기술적 결함으로 밝혀졌으며, 베리야는 결국 총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