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통과하지 못하리라!”: 파시스트 군대의 마드리드 진입을 저지한 반파시즘의 목소리
“침략의 파시즘이 스페인에서 저지르는 범죄를 계속 방치한다면, 파시즘은 유럽의 다른 민족들에게도 밀어닥칠 것입니다. 스페인 인민은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기를 택합니다.” — 파리 지지집회 연설, 1936년 9월 3일
스페인공산당(PCE)의 상징적 지도자로, 내전 중 "¡No pasarán!"을 외쳐 반파시즘 투쟁의 얼굴이 되었다. 망명 중 프랑코 독재에 저항했으며,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공개 반대했다.
경력 연표
- 1917스페인 사회노동당(PSOE) 입당
- 1918『엘 미네로 비스카이노』에 첫 기사 게재, 필명 '파시오나리아' 사용 시작
- 1922통일 스페인공산당(PCE) 창립 참여
- 1930PCE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
- 1933반파시스트 여성연합 창설 의장
- 1935코민테른 제7차 대회 — 집행위원회 후보위원 선출
- 1936.2아스투리아스 지역구 코르테스 의원 당선
- 1936.7라디오 연설 “¡No pasarán!” — 파시스트 군대의 마드리드 진입 저지 호소
- 1937코르테스 부의장 선출
- 1939–1942소련 망명 — 코민테른 활동 지속
- 1941–1963단파방송 '독립 스페인 라디오'(라디오 피레나이카) 지휘
- 1942–1960스페인공산당(PCE) 서기장
- 1945국제민주여성연맹(WIDF) 공동 창립, 부의장
- 1960–1989PCE 의장
- 1968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개입 공개 반대
- 1977프랑코 사후 귀국 — 41년 만에 다시 코르테스 의원 당선
관련 역사 사건
초기 생애와 정치적 형성 — 광부의 딸에서 파시오나리아로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1895년 12월 9일 비스카야 지방의 광산촌 갈랴르타에서 11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안토니오는 바스크계 광부로, 폭약 발파 작업 중 입은 부상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어머니 훌리아나는 카스티야 출신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사범학교 진학을 준비했으나, 열다섯 살에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재봉사와 가정부로 일해야 했다.
소모로스트로의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중 사회주의 청년 조직의 창립자 훌리안 루이스 가비냐를 만나 1916년 결혼했다. 1917년 총파업에 부부가 함께 참가했고, 루이스는 투옥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이바루리는 소모로스트로 사회주의 노동자회관 도서실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밤새 읽으며 독학했다. 1918년 성주간에 광부 신문 『엘 미네로 비스카이노』에 종교적 위선을 비판하는 첫 기사를 실었고, 필명으로 '파시오나리아'(열정의 꽃)를 선택했다. 성주간이라는 시기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시키는 이 이름은 이후 그녀의 정치적 정체성이 되었다.
1920년 이바루리는 새로 창립된 스페인공산당(PCE)에 입당했고, 곧 바스크 공산당 지방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이후 10년간 풀뿌리 활동에 몰두하며 여섯 차례 체포·투옥되는 탄압을 겪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섯 딸 중 넷을 어린 나이에 잃는 비극을 겪었으며, 남편은 과일 상자로 작은 관을 짜야 했다. 이 경험들은 그녀의 강인한 정치적 의지와 대중을 향한 연설의 원천이 되었다. 1930년 PCE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며 본격적인 전국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저술과 회고록
이바루리는 뛰어난 연설가일 뿐 아니라 다작의 저술가이자 공산당의 공식 역사편찬을 이끈 지식인이기도 했다. 1918년 광부 신문 『엘 미네로 비스카이노』에 '파시오나리아'라는 필명으로 첫 기사를 쓴 이래, 그녀의 글쓰기는 노동 운동 보도에서 출발해 본격적인 역사 서술과 자전적 문학으로 발전했다. 1930년대에는 PCE 기관지 『문도 오브레로』의 편집자로서 날카로운 정치평론을 썼고, 1938년에는 주요 연설과 기고문을 묶은 영문 선집 『Dolores Ibárruri: Speeches & Articles 1936–1938』이 뉴욕에서 출간되어 국제적 독자층을 확보했다.
그녀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1962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된 자서전 『유일한 길』(El único camino)이다. 광부의 딸로 태어나 가톨릭 신앙에서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이 책은 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영어·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읽혔으며, 스페인 공산주의자의 내적 성장기로서 문학적·사료적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았다. 1984년에는 망명 시절을 다룬 두 번째 회고록 『파시오나리아의 기억, 1939–1977』(Memorias de Pasionaria, 1939–1977)을 바르셀로나에서 출간했다.
이바루리는 당의 집단적 역사 서술 작업도 지휘했다. 1960년 PCE 중앙위원회 산하 위원회를 이끌어 『스페인 공산당사』(Historia del Partido Comunista de España)를 편찬했고(러시아어판 1961년), 1966년부터 1971년까지는 4권으로 된 대작 『스페인의 전쟁과 혁명 1936–1939』(Guerra y revolución en España, 1936–1939)의 편집위원장으로서 PCE의 시각에서 본 내전의 종합적 역사를 완성했다. 1961년 모스크바국립대학교는 그녀에게 역사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마르크스주의 이론 발전에 대한 기여를 공식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