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카

E. H. Carr
비볼셰비키 사회주의자 영국 영국 1892–1982 ○ 자연사

14권 『소비에트 러시아사』의 저자, 네프의 "시장과 계획의 잠재적 양립불가능성"을 진단한 역사가

'신경제정책의 원리와 계획의 원리 사이에는 잠재적 양립불가능성이 있었다.' 『계획경제의 기초』(1969)에서.

영국 외교관 출신 역사가로, 14권의 『소비에트 러시아사』(1950–1978)를 집필해 초기 소비에트 권력의 정치·경제·사회를 총체적으로 기록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20년의 위기』(1939)로 현실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역사란 무엇인가』(1961)에서 역사 서술을 사실 축적이 아닌 해석의 과정으로 재정의했다. 네프에 관해 '신경제정책의 원리와 계획의 원리 사이에는 잠재적 양립불가능성이 있었다'고 진단했으며, 이는 네프의 생존 가능성을 둘러싼 4대 역사학적 입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말년까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로 소비에트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외교관 경력(1916~1936)

E. H. 카는 학자 이전에 외교관이었다. 1916년 영국 외무부에 들어갔고, 처음 배치된 부서는 독일 봉쇄를 집행하려 한 전시물자국이었다. 1917년 러시아 담당 부서인 북방국으로 옮기면서 러시아 문제가 그의 평생 주제가 되었다. 당시 그는 볼셰비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도 접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회고했다.

1919년에는 파리 강화회의 영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국제연맹과 관련된 베르사유 조약 조항의 기초 작업을 맡았고, 독일-폴란드 국경 문제에도 관여했다. 1920년에는 CBE를 받았다. 파리 주재 대사관 근무를 거쳐 국제연맹 업무를 담당했으며, 1925~1929년에는 라트비아 리가에서 2등 서기관으로 일했다. 리가에서 러시아어를 익혀 러시아 문학을 원문으로 읽었고, 1927년 처음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당시 리가에는 규모 있는 러시아 망명 공동체가 있었다. 헤르첸과 도스토옙스키 등 19세기 러시아 지식인을 읽으면서 그의 자유주의적 신념은 흔들렸고, 훗날 그 때문에 자신의 견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1929년 여름 도스토옙스키 전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당시 영국에 거주하던 망명 학자 미르스키와 친분을 맺었다. 1929년부터는 여러 문예지에 러시아·소비에트 및 국제정치 서평을 쓰기 시작해 1930년대 초에는 『타임스 문학부록』의 소비에트 담당 평론가로 자리 잡았다. 외교관 신분 탓에 이 시기 서평 대부분은 익명이나 '존 핼릿'이라는 필명으로 실렸다.

1936년 트리니티 칼리지를 비롯한 학계로 옮기기 위해 외무부를 사임했다. 외무차관 로버트 밴시타트와의 갈등, 특히 유화 정책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사임에 영향을 주었다.

1937년 소련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레닌그라드 거리에서 우연히 미르스키를 만나 식사를 청했다. 예조프시나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여서 외국인과의 비인가 접촉은 간첩 행위로 취급되기 쉬웠고, 미르스키는 영국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2년 뒤 마가단 인근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카가 이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는 기록상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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