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의 교육 대표를 지내고 망명 뒤 블랑키파를 이끌다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창당에 참여한 사회주의자
1840년 비에르종에서 태어나 에콜 상트랄과 소르본에서 공부했다. 프루동을 읽고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했으며 1866년 독일로 유학했다. 1870년 파리 포위 중 블랑키를 만났고, 국방정부에 맞선 10월 31일과 1월 22일 봉기에 가담했으며, 코뮌 수립을 요구한 「붉은 벽보」를 함께 썼다. 1871년 3월 코뮌 의원에 뽑혀 공교육 대표로서 학교의 종교 교육을 없애려 했다. 피의 주간 뒤 런던으로 망명해 인터내셔널의 블랑키파 경향에 섰다가 1872년 갈라섰다. 1880년 사면으로 돌아와 중앙혁명위원회와 혁명사회당을 이끌었고, 1893년부터 죽을 때까지 하원의원을 지냈다. 1905년 SFIO 창당에 참여했고 1914년 신성 동맹을 지지했다.
다른 이름: 마리 에두아르 바양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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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1872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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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1871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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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파리 코뮌(1871)코뮌 의원·공교육 대표대표
정부·행정 -
1881–1898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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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1915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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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1901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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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05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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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15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66국제노동자협회 가입, 독일 유학
- 1871「붉은 벽보」 공동 작성, 코뮌 의원·공교육 대표
- 1871–1880런던 망명, 인터내셔널 총평의회의 블랑키파
- 1881중앙혁명위원회 지도자
- 1893–1915센 도(파리 20구) 하원의원
- 1905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창당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