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맬러리 알몬드

Edward Mallory Almond
미국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미국 미국 1892–1979 ○ 자연사

공세적 지휘와 인종주의가 얽힌 미군 장성

“중국인 세탁부대 따위가 우리를 막게 두지 마라.”

에드워드 알몬드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친 미국 육군 장성으로, 공격적 지휘관이라는 명성과 인종주의적 편견이 함께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흑인 병사들로 구성된 제92보병사단을 지휘했으며, 사단의 전투 성과를 병사들의 인종적 능력 탓으로 돌려 군의 흑인 전투부대 운용에 반대했다. 한국전쟁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참모총장으로서 인천상륙 뒤 창설된 X군단을 지휘했고, 인천과 서울 탈환에 기여했다. 그러나 동북부 진격에서 병력을 넓게 분산하고 중국군의 규모를 과소평가해 X군단의 위기를 키웠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은퇴 이후의 인종분리 옹호 활동

알몬드는 1953년 1월 31일 육군에서 은퇴한 뒤 보험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군에서 물러난 뒤에도 인종 분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거두지 않았고, 이는 공적 활동으로 이어졌다. 1956년 알몬드는 인종분리를 옹호하는 회의에 대의원으로 참여했다. 이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의 다수 의견을 작성한 얼 워런 대법관을 미국의 적으로 규정했으며, 미국이 '마르크스주의-시오니즘' 세력의 장악에 직면했다고 주장하고 인종 통합을 공산주의와 동일시했다.

이 활동은 알몬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흑인 병사들의 전투 능력을 병사들의 인종 탓으로 돌리고 흑인 전투부대 운용에 반대했던 입장이 전후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동시대의 많은 인물이 그의 견해를 공유했지만, 알몬드는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퇴 후 그는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곳에는 프랑스에서 전사한 아들 에드워드 M. 알몬드 주니어 대위의 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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