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카펜터

Edward Carpenter
독립 활동 사회민주주의자 영국 영국 1844–1929 ○ 사망

『중간의 성』으로 동성애를 옹호한 영국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시인

1898년부터 노동계급 남성 조지 메릴과 평생 함께 살며 『동성애적 사랑』(1894)과 『중간의 성』(1908)을 써 동성애를 계급을 넘는 민주주의의 감정으로 그렸다.

호브의 해군 제독 집안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를 나온 영국의 사회주의자·시인·철학자. 국교회 부목사를 그만두고 북부로 가 노동자들과 어울렸고, 1883년 사회민주연맹, 이듬해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주의 동맹에 들어갔다. 밀소프에서 「단순한 삶」을 살며 장시 『민주주의를 향하여』를 썼다. 노동계급 남성 조지 메릴과 1898년부터 평생 함께 살았고, 『중간의 성』(1908)으로 동성애를 옹호했다. 1914년 영국 성심리학 연구회를 함께 세웠다. 1929년 길퍼드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단순한 삶」과 우라니아인의 사랑

브라이턴 칼리지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홀을 나와 기독교 사회주의자 F. D. 모리스의 부목사가 되었지만, 빅토리아 사회의 위선에 지쳐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위안을 찾았고 1877년 미국으로 그를 찾아갔다. 1874년 성직을 떠나 리즈와 셰필드에서 대학 확장 운동 강사로 일하며 육체 노동자들과 어울렸다. 1882년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으로 밀소프에 집을 짓고 샌들을 만들며 「단순한 삶」을 살았고, 1883년 휘트먼과 『바가바드기타』에서 영감을 얻은 장시 『민주주의를 향하여』 첫 부를 냈다. 같은 해 사회민주연맹에 들어갔고, 1884년 윌리엄 모리스와 함께 사회주의 동맹으로 옮겼으며, 1892년부터는 독립노동당에서 활동했다.

1891년 인도에서 돌아와 셰필드 출신의 노동계급 청년 조지 메릴을 만났고, 둘은 1898년부터 메릴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그는 1890년대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글들을 써 『동성애적 사랑과 자유 사회에서 그 자리』(1894), 『사랑의 성년』(1896), 『중간의 성』(1908)을 냈다. 『중간의 성』에서 그는 에로스가 계급과 신분의 경계를 넘는 「위대한 평등주의자」이며 참된 민주주의가 그 위에 서 있을지 모른다고 썼다. 1914년 4월 로런스 하우스먼, 조지 아이브스 등과 영국 성심리학 연구회를 세웠다.

E. M. 포스터는 1913년 밀소프를 찾은 일에서 동성애 소설 『모리스』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고, 카펜터의 삶은 D. H. 로런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922년 메릴과 길퍼드로 옮겼고, 여든 살 생일에는 램지 맥도널드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내각 전원이 서명한 앨범을 받았다. 1928년 1월 메릴이 갑자기 죽고 5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1929년 6월 28일 숨져 메릴과 같은 무덤에 묻혔다. 1970~1980년대 제프리 윅스, 실라 로보섬 같은 역사가들이 그를 다시 조명했고, 그는 「영국 좌파의 게이 대부」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