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루디 에른스트 크렌츠

Egon Krenz
동독 공산주의 동독 독일 1937–

호네커를 계승했으나 장벽을 열고 50일 만에 몰락한 동독의 마지막 공산당 지도자

1989년 11월 9일, 크렌츠는 중앙위원회에서 여행 규정 초안을 낭독한 뒤 "자, 이걸 기자들에게 설명해 주게"라며 샤보프스키에게 쪽지를 건넸고, 몇 시간 후 베를린 장벽이 열렸다.

에리히 호네커의 후계자로 지목된 동독 공산주의 지도자로, 1989년 10월 호네커 축출 후 SED 총서기가 되었다. 취임 3주 만에 여행 규정 초안을 승인하고 11월 9일 중앙위원회에서 낭독한 뒤 이를 귄터 샤보프스키에게 건네며 기자회견에서 발표하도록 했고, 그날 밤 베를린 장벽이 열렸다. 개혁을 약속했으나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12월 초 전권을 내놓았다. 통일 후 국경 사망 사건에 대한 형사책임으로 6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청년 조직 간부에서 당 서열 2인자로 (1953-1984)

크렌츠의 정치 경력은 청년 조직에서 시작되었다. 뤼겐의 담가르텐에서 1953년 인민학교 상급과정을 마친 그는 같은 해 자유독일청년단(FDJ)에 가입했고, 로스토크의 디젤기관 공장에서 기계공 수습 과정을 중단한 뒤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뤼겐섬 푸트부스의 교원양성기관에서 수학해 초등학교 교원 자격을 취득했다. 1955년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에 입당했으며, 1957년부터 1959년까지 국가인민군에서 복무하면서 사단급에서 FDJ 기능을 맡았다. 제대 후 1959년 뤼겐 군 FDJ 서기, 1960년 로스토크 지구 FDJ 제1서기가 되었고 1961년 FDJ 중앙위원회 서기로 선출되어 대학과 전문학교의 청년단 활동을 담당했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 모스크바의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당학교에서 수학해 사회과학 학위를 받았고, 이후 1974년까지 FDJ 중앙위원회 서기로서 선전·선동과 학교 청년단 활동을 책임졌다.

1971년에는 FDJ 산하 에른스트 텔만 소년단 의장이 되어 1974년까지 재임했고, 같은 해 인민의회 의원(1971~1990)과 그 간부회 위원(1971~1981)이 되었다. 1973년 SED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974년부터 1983년까지 FDJ 중앙위원회 제1서기로서 청년 조직 전체를 지도했다. 1976년 정치국 후보위원을 거쳐 1983년 정치국 위원 겸 중앙위원회 안보·청년·체육·국가 및 법률문제 담당 서기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호네커가 총서기가 되기 전 맡았던 자리였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국가평의회 위원을 지냈고, 1984년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임명되면서 에리히 호네커에 이은 당 서열 2인자가 되었으며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는 정치국 최연소 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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