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막내딸로 『자본』 영역과 영국 노동운동에 힘쓴 사회주의자
카를 마르크스의 막내딸. 열여섯 살부터 아버지의 비서로 일했고, 아버지가 죽은 뒤 엥겔스의 감독 아래 『자본』 1권 첫 영어판(1887)을 준비했다. 1884년 사회민주연맹 집행부에 뽑혔다가 이듬해 사회주의 동맹을 함께 세웠고, 가스 노동자 조합 조직과 1889년 런던 부두 파업을 도왔다.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과 입센 희곡을 처음 영어로 옮겼다. 1898년 동반자 에드워드 에이블링의 비밀 결혼을 알게 된 뒤 음독했다.
다른 이름: 엘리너 마르크스에이블링 · 투시 마르크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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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1885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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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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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898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73.05–09브라이턴에서 교사로 일함
- 1884사회민주연맹 집행위원
- 1885사회주의 동맹 창립
- 1887『자본』 1권 첫 영어판 간행
- 1897사회민주연맹 재가입
『자본』과 번역
엘리너는 아버지가 『자본』 1권을 쓰던 서재에서 자랐고, 열여섯 살 무렵부터 비서로 일했다. 1883년 마르크스가 죽은 뒤 그녀와 에드워드 에이블링이 엥겔스의 감독 아래 『자본』 1권 첫 영어판을 준비해 1887년에 펴냈다. 마르크스의 강연 원고 『가치, 가격, 이윤』과 『임금 노동과 자본』도 책으로 엮었고, 1895년 엥겔스가 죽자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해 보관했다.
번역가로서 그녀는 1876년 리사가레의 『1871년 코뮌의 역사』를 영어로 옮겼고, 1886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처음 영어로 번역했다. 노르웨이어를 배워 입센의 『민중의 적』(1888)과 『바다에서 온 여인』(1890)도 옮겼다.
영국 노동운동
1884년 하인드먼이 이끄는 사회민주연맹에 들어가 집행부에 뽑혔다. 이듬해 하인드먼의 독단적 지도와 민족주의 경향에 반발해 윌리엄 모리스 등과 함께 사회주의 동맹을 세웠고, 기관지 《커먼윌》에 국제 혁명운동 소식을 연재했다. 선거 참여를 주장하다가 동맹 안에서 소수파가 되었고, 그녀가 속한 블룸즈버리 지부는 사회민주연맹과 공동 후보를 냈다는 이유로 정권 처분을 받았다.
그녀는 1887년 11월 13일 「피의 일요일」 시위 조직에 참여했고, 가스 노동자 조합을 조직했으며 1888년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 공장 파업과 1889년 런던 부두 파업을 지원했다. 1886년에는 에이블링·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미국을 돌며 독일 사회민주당 기금을 모았다. 1893년 독립노동당 창립 대회에 참관했고, 1897년 에이블링과 함께 사회민주연맹에 다시 들어갔다.
죽음
1898년 엘리너는 병든 에드워드 에이블링이 전해에 젊은 배우와 몰래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3월 31일 그녀는 에이블링의 머리글자로 서명한 쪽지를 하녀에게 들려 약국에 보내 클로로포름과 청산을 사 오게 한 뒤, 짧은 유서 두 통을 쓰고 독을 마셨다. 마흔세 살이었다. 검시 배심은 「일시적 정신 이상 상태의 자살」로 평결했지만,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에이블링은 그녀를 죽음으로 몬 사람으로 지탄받았다.
유골은 사회민주연맹, 영국 사회당, 영국 공산당이 차례로 보관하다가 1956년 하이게이트 묘지의 마르크스 묘에 함께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