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에르코

Eljas Erkko
핀란드 국가기관 핀란드 핀란드인 1895–1965 ○ 사망

스탈린의 요구를 허세로 간주하고 만네르헤임의 타협론을 묵살한 겨울전쟁 직전의 핀란드 외무장관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라": 파시키비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에르코가 남긴 훈시.

헬싱긴 사노마트를 북유럽 최대 일간지로 키운 언론 재벌로, 1938년 12월 외무장관에 취임하여 소련과의 협상 전권을 장악했다. 모스크바로 떠나는 파시키비에게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라"고 훈시할 만큼 확신에 찬 강경파였으며, 스탈린의 영토 요구를 허세로 간주하고 만네르헤임 원수의 타협 권고를 묵살했다. 그가 소유한 헬싱긴 사노마트가 여론을 타협 불가 방향으로 이끈 가운데 협상은 결렬되었고, 겨울전쟁 발발 후 파시키비는 이를 "에르코의 전쟁"이라 불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후 언론 재벌과 국제 언론계 활동

전쟁이 끝난 뒤 에르코는 다시 언론과 기업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1943년 핀란드-미국 협회(Suomalais-Amerikkalainen yhdistys) 창립에 참여해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초대 회장을 맡았다. 나치 독일의 불만을 샀던 이 구상은 전후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그가 미국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전후 그는 헬싱긴 사노마트를 국제적 수준의 신문으로 키우는 데 힘썼다. 1930년대부터 대형 통신사와 신문사들과 맺은 계약으로 해외 뉴스망을 넓혔고, 자사 특파원도 외국에 파견했다. 이렇게 축적된 정보와 전문성은 헬싱긴 사노마트뿐 아니라 핀란드통신(Suomen Tietotoimisto)과 핀란드 신문발행인 단체에도 제공되었다. 그는 사진부로 레흐티쿠바(Lehtikuva)도 세웠다. 국내 최대 신문으로서 헬싱긴 사노마트는 핀란드 언론의 방향을 제시하는 위치에 올랐다. 에르코는 또한 산업·금융계에서도 활동을 넓혀 국민주식은행(Kansallis-Osake-Pankki)의 아버지 대부터의 업무를 이어받아 마침내 관리이사회 의장이 되었고, 보험·해운·항공 분야에서도 신임직을 맡았다. 언론계 활동은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51년 국제언론협회(IPI) 창립에 참여했고 이후 이사와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의장을 지냈으며 1963년 명예회원이 되었다. 이미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 회원으로 초청받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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