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리츠 에밀 밀케

Erich Mielke
동독 독일 1907–2000 ○ 자연사

동독 '공포의 대가': 32년간 슈타지를 장악한 국가보안 수장

“사형 찬반에 대한 그 모든 헛소리 — 전부 헛소리다, 동무들. 집행하라! 필요하다면 법정 판결 없이도.” — 1982년, 슈타지 간부들 앞에서

베를린 빈민가 출신의 공산주의 투사로, 1931년 경찰관 살해 후 소련으로 망명해 NKVD 훈련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 참전 뒤 1945년 귀환하여 동독 국가보안부 창설을 주도했고, 1957년 장관에 올라 32년간 9만 명 규모의 감시 기구를 이끌었다. 슈타지는 동독 사회 전반을 통제했고, 제3세계 무장투쟁 세력과 서유럽 극좌 조직 지원으로 냉전기 사회주의권 안보 협력망을 확장했다. 1989년 체제 붕괴로 물러났고 통일 후 1931년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국제 작전과 제3세계 지원

밀케가 이끈 슈타지는 동독 국내 감시를 넘어 냉전기 사회주의권의 글로벌 안보 협력망 확장에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마르쿠스 볼프가 지휘한 해외정보국(HVA)을 통해 슈타지는 쿠바, 시리아, 니카라과, 에티오피아, 남예멘, 베트남 등 제3세계 신생 혁명정권에 비밀경찰 창설 노하우와 감시 장비를 제공하고 군사고문을 파견했다. 특히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에티오피아 군사정권과의 긴밀한 관계는 유명했으며, 밀케는 데르그 정권의 적색테러와 반인도범죄에 슈타지 군사고문들이 연루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독과 서유럽을 겨냥한 작전은 더욱 광범위했다. 슈타지는 서독 적군파(RAF) 조직원들에게 동독 내 은신처와 신분증을 제공했고, 울리케 마인호프는 1970년 직접 동베를린을 찾아 슈타지와 접촉했다. 밀케는 '반제투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명분 아래 PLO, 아부 니달, 검은 9월단 등 팔레스타인 무장조직과 칠레의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 남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군사조직 움콘토 웨 시즈웨 등에 무기와 군사훈련을 지원했다. 뮌헨 올림픽 참사를 기획한 검은 9월단의 아부 다우드가 동독을 방문했을 때 밀케는 그를 '우리 국가의 친구'로 대우했으며, 전 슈타지 대령 라이너 비간트는 이에 항의했으나 묵살당했다.

나미비아의 스와포, 앙골라의 MPLA, 모잠비크의 프렐리모, 로디지아의 로버트 무가베가 이끈 자늘라(ZANLA) 등 남부 아프리카 해방운동에도 슈타지 군사고문들이 파견되어 소련 측 군사 지원의 일익을 담당했다. 이러한 국제 작전은 동독을 냉전기 소련 블록의 '대외원조 작업장'으로 만들었으며, 밀케 본인에게는 국내적 위상 강화와 소련에 대한 충성 증명이라는 이중적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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