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개월 만에 혁명을 촉발한 마지막 스탈린주의 제1서기
1956년 10월 23일 밤 게뢰는 라디오 연설에서 학생 시위대를 향해 '우리 청년들에게 쇼비니즘의 독을 주입하려는 자들'이라고 규탄했고, 수 시간 내로 평화 시위는 혁명으로 바뀌었다.
헝가리 공산운동의 핵심 인물로, 1918년 창당과 함께 입당해 1919년 평의회 공화국에서 활동했다. 코민테른 요원과 NKVD 공작원으로 프랑스·스페인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는 '바르셀로나의 도살자'로 불리며 트로츠키주의자 숙청을 지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라코시의 오른팔로 헝가리 경제 스탈린화를 주도했고, 1956년 7월 라코시 후임 제1서기가 되었으나 개혁 요구를 거부했다. 10월 23일 저녁 시위대를 '파시스트'로 규정한 라디오 연설은 봉기를 혁명으로 폭발시켰고, 25일 사임 후 소련으로 도피했다.
경력 연표
- 1918–19헝가리 공산당 창당 가입, 평의회 공화국 청년공산주의자 활동
- 1925–36코민테른·NKVD 공작원: 프랑스·벨기에·스칸디나비아 등지에서 활동
- 1936–39스페인 내전: 카탈루냐 통일사회당(PSUC) 배후 지도, 트로츠키주의자(POUM) 숙청 지휘
- 1940–44모스크바 망명: KPV 해외국 라코시와 공동 지도, 포로·적군 대상 선전
- 1945–48최고국가평의회 위원, 통상·교통장관
- 1948–53MDP 정치국원·부서기장, 재무장관: 중공업화·집단화로 경제 스탈린화 주도
- 1953–56.07내무장관·부총리; 1956년 7월 MDP 제1서기
- 1956–8010월 25일 사임, 소련 도피; 1960년 귀국, 1962년 출당, 은둔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