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절차를 움직인 국제법률가
1950년 6월 25일, 그는 한국의 상황을 보고하고 결의안 표결을 위한 안전보장이사회 절차를 이끌었다.
어니스트 그로스는 국제법률가이자 미국 외교관으로, 법률 자문과 전후 점령지 행정을 거쳐 유엔에서 미국의 정책을 대표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미국 대표단을 이끌며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82를 채택하도록 절차와 표결을 조율했다. 이 과정은 소련 대표의 불참이라는 조건을 활용한 미국 외교의 성과였지만, 유엔의 집단안보가 강대국 경쟁 속에서 작동한 방식이라는 긴장도 남겼다. 이후 그는 국제변호사로서 티베트 문제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다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9–1953 외교·국제활동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31–1933미 국무부 법률고문
- 1940–1943전시노동위원회 부법률고문
- 1943–1945미 육군 민정국 경제과장
- 1945–1949국무부 법률고문 및 점령지역 담당 차관보 보좌관
- 1949국무부 의회관계 담당 차관보
- 1949–1953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차석대표, 1949–1950년 대표단장 직무대행
- 1953–1999커티스·말레-프레보스트 법률사무소 변호사
- 1959–1960티베트 망명정부 국제연합 로비스트·자문역
- 1960년대국제사법재판소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소송 제기
관련 역사 사건
국무부 법률고문 재직과 제노사이드 협약 서명 (1947–1949)
1945년 종전 후 그로스는 국무부로 돌아와 법률고문(Legal Adviser)과 점령지 담당 차관보 대리(당시 점령지 담당 차관보는 존 H. 힐드링 장군이었고 1947년부터는 찰스 E. 솔츠먼이었다)를 겸임했다. 그가 국무부 법률고문으로 공식 재직한 기간은 1947년 7월 21일 임명·8월 16일 취임에서 1949년 3월 3일 해임까지이며, 이어 1949년 3월부터 10월까지 의회 관계 담당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Legislative Affairs)를 지냈다.
이 시기 그의 대표적 행적은 1948년 12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미국을 대표해 제노사이드 협약(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서명한 일이다. 이 협약은 1948년 12월 9일 유엔 총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최초의 인권 조약이자 집단살해를 범죄로 성문화한 최초의 법적 문서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잔학 행위에 대응해 마련되었다. 다만 서명과 비준은 별개의 절차였으므로 그로스의 서명 자체가 곧 미국의 협약 가입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로스의 1947–1949년 국무부 재직기를 이후 유엔 대표단 활동과 구분해 두면, 그의 유엔 활동이 법률고문·의회 관계 실무 경험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