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톨러

Ernst Toller
독일 유대계 독일인 1893–1939 ✕ 자살

바이에른 혁명에 참여한 독일 유대계 표현주의 극작가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해 베르됭 전투에서 부상한 뒤 1917년 제대했고, 전쟁 경험을 거쳐 평화주의자가 되어 독일독립사회민주당에 가입했다. 1919년 4월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대통령을 엿새간 맡고 공화국의 무장 저항에 참여했으며,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대표 희곡들을 썼다. 나치 집권 뒤 망명해 반나치 활동을 이어갔고 1939년 뉴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수감기 문학과 혁명 예술

1919년 7월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은 톨러는 뮌헨의 슈타델하임, 노이부르크안데어도나우와 아이히슈테트의 구금시설을 거쳐 1920년 니더쇠넨펠트 교도소로 옮겨졌다. 그는 이 수감기에 『군중과 인간』(Masse Mensch, 1921), 『독일의 절름발이 인간』(Der deutsche Hinkemann, 1923), 『풀려난 보탄』(Der entfesselte Wotan, 1923) 등의 희곡과 시집 두 권을 썼다. 이 작품들은 무대에 올라 큰 호응을 얻었고 그를 국제적으로 알려진 극작가로 만들었다. 『군중과 인간』은 1919년 10월 니더쇠넨펠트에서 처음 원고로 쓰기 시작했으며, 1921년 서문에서 톨러는 혁명기의 혼란스러운 기억과 감옥에서 본 장면들이 작품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사회세력의 집단적 대립과 개인의 경험을 현실과 환상의 교차로 표현했다. 같은 수감기 작품인 『기계파괴자들』은 1922년 라테나우 암살 며칠 뒤 초연되어 공화국의 적들을 겨냥한 정치적 항의의 장이 되었다. 톨러는 노동자와 사회적 갈등을 전면에 놓는 혁명적 연극을 추구했으며, 수감 중 집필한 작품들이 그의 명성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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