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혁명에 참여한 독일 유대계 표현주의 극작가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해 베르됭 전투에서 부상한 뒤 1917년 제대했고, 전쟁 경험을 거쳐 평화주의자가 되어 독일독립사회민주당에 가입했다. 1919년 4월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대통령을 엿새간 맡고 공화국의 무장 저항에 참여했으며,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대표 희곡들을 썼다. 나치 집권 뒤 망명해 반나치 활동을 이어갔고 1939년 뉴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문학·예술 · 소속 미확정
경력 연표
- 1914독일군에 자원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 1917전쟁 중 부상과 건강 악화 뒤 군에서 제대하다.
- 1919독일독립사회민주당원으로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지도부에 참여하고, 4월 6~12일 대통령을 맡다.
- 1919공화국의 무장 저항에 참여한 혐의로 반역죄 5년형을 선고받다.
- 1925석방되어 바이에른에서 추방되고 베를린으로 가다.
- 1933나치 집권 뒤 독일을 떠나 스위스·프랑스·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다.
관련 역사 사건
수감기 문학과 혁명 예술
1919년 7월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은 톨러는 뮌헨의 슈타델하임, 노이부르크안데어도나우와 아이히슈테트의 구금시설을 거쳐 1920년 니더쇠넨펠트 교도소로 옮겨졌다. 그는 이 수감기에 『군중과 인간』(Masse Mensch, 1921), 『독일의 절름발이 인간』(Der deutsche Hinkemann, 1923), 『풀려난 보탄』(Der entfesselte Wotan, 1923) 등의 희곡과 시집 두 권을 썼다. 이 작품들은 무대에 올라 큰 호응을 얻었고 그를 국제적으로 알려진 극작가로 만들었다. 『군중과 인간』은 1919년 10월 니더쇠넨펠트에서 처음 원고로 쓰기 시작했으며, 1921년 서문에서 톨러는 혁명기의 혼란스러운 기억과 감옥에서 본 장면들이 작품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사회세력의 집단적 대립과 개인의 경험을 현실과 환상의 교차로 표현했다. 같은 수감기 작품인 『기계파괴자들』은 1922년 라테나우 암살 며칠 뒤 초연되어 공화국의 적들을 겨냥한 정치적 항의의 장이 되었다. 톨러는 노동자와 사회적 갈등을 전면에 놓는 혁명적 연극을 추구했으며, 수감 중 집필한 작품들이 그의 명성을 확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