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데의 사도」로 불린 앙주군의 신부, 뒤에 정교협약을 협상하고 오를레앙 주교가 되었다
1762년 앙주의 다옹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앙제 대학 신학 교수와 생로 본당 신부가 되었다. 성직자 민사기본법 서약을 거부했고, 1793년 봉기 때 앙주군에 합류해 방데군 최고평의회 위원이 되어 「방데의 사도」라 불렸다. 사부네 패배 뒤 숨어 지내다 스토플레의 앙주군에 들어가 선언문을 쓰고 대외 연락을 맡는 실질적 지도자가 되었고, 마리니의 처형도 그의 영향으로 여겨졌다. 1795년 강화 교섭을 맡았고 라자주네 조약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 1796년 2월 스토플레는 그가 부른 은신처에서 체포되었다. 통령정부 아래 1801년 정교협약의 전권위원이 되었고 1802년 오를레앙 주교가 되었다.
다른 이름: 베르니에 신부 · 에티엔알렉상드르 장바티스트 마리 베르니에
주요 활동과 소속
- 1793–1796 정치·당 지도 · 가톨릭 왕당군
- 1801 외교·국제활동 · 통령정부·제1제국 국가기관
- 1802–1806 종교 · 가톨릭교회
경력 연표
- 1793방데군 최고평의회 위원
- 1794–1796스토플레의 앙주군 고문
- 1801정교협약 전권위원
- 1802–1806오를레앙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