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V. 뎁스

Eugene V. Debs
미국 미국 1855–1926 ○ 심장마비 사망

5선 미국 사회당 대통령 후보이자 철도노동자 산업별조합의 선구자

1918년 법정 최후진술에서 "하층 계급이 존재하는 한 나는 그 안에 있고, 범죄자가 존재하는 한 나는 그 일부이며, 감옥에 갇힌 영혼이 있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다"고 선언했다.

미국 사회주의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산업별 노동조합주의의 선구자였다. 미국철도연합(ARU)을 이끌어 1894년 풀먼 파업을 조직하고 투옥 중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으며, 미국 사회당(1901)과 IWW(1905) 창립에 참여했다. 다섯 차례 대선에 출마해 1912년 90만 표(6.0%)를 얻었고, 1차 대전 반대 연설로 수감된 1920년에도 91만 표를 득표해 미국 사회주의 선거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입장

뎁스는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10월 혁명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1918년 4월 『더 콜』에 기고한 「러시아 혁명의 영혼」에서 그는 혁명을 "역사상 유례없는 기념비적 성취"로 찬양하며, "볼셰비키는 자신들을 위해 요구한 것을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똑같이 요구했다"고 썼다. 1919년 2월, 루이스 프레이너·루트비히 로레와 함께 편집한 『계급투쟁』지에 발표한 「인민의 날」에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는 볼셰비키이며,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유명한 선언을 남겼고, 레닌트로츠키를 "용감하고 타협하지 않는 지도자"로, 케렌스키와 셰이데만을 노동계급 배신자로 규정했다.

레닌 또한 뎁스를 주목했다. 1916년 2월 베른 국제사회주의위원회에서 레닌은 뎁스의 반전 논설 「나는 결코 군인이 되지 않겠다」(1915)를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주의적 입장의 증거로 인용했다. 1918년 8월 「미국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레닌은 뎁스를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1919년 사회당이 분열하여 공산당이 창설되었을 때 뎁스는 사회당에 잔류했으나 소비에트 러시아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고, 1920년 수감 중 대선 출마 때도 볼셰비키 혁명을 옹호했다. 1921년 12월 출감 후 뎁스는 1921~22년 소비에트 기근 구제를 위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친구들' 운동에 적극 참여해 식량과 농기구 지원을 호소했다. 1922년에는 아말가메이티드 의류노동자조합이 주도한 러시아-미국 산업공사(RAIC)를 지지하며 소비에트 재건을 위한 기계·공구 지원을 촉구했다. 뎁스는 생애 마지막까지 레닌과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존경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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