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제니오 레알레

Eugenio Reale

코민포름 창립 회의의 이탈리아 대표로, 스탈린의 전화선을 목격한 공산주의자에서 반공 비판자로 전향한 인물

“스탈린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회의의 절대적 지배자였다. 토론 중에 우리가 이 사실을 의식하게 된 것은 슈클라르스카 포렝바 성과 크렘린 사이에 직통 전화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966년 회고록)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이자 의사로, 전후 연립정부에서 외무차관을 지냈고 폴란드 대사를 역임했다. 1947년 코민포름을 창립한 슈클라르스카 포렝바 회의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석했으며, 1966년 회고록은 크렘린으로 직통된 스탈린의 전화선과 프랑스·이탈리아 공산당에 대한 즈다노프의 사전 계획된 공격을 포함한 회의의 가장 상세한 목격 증언이 되었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계기로 이탈리아 공산당과 결별했고, 이후 반공 비판자로 활동하며 『사회주의 통신』을 창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헝가리 혁명 이후의 결별과 사회주의 언론

1956년 헝가리 혁명 진압을 지지한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태도에 반대해 레알레는 당에서 이탈했다. 트레카니는 그해 그가 당원직을 사임하고 이후 당에 강하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기록한다. 동시대에 가까운 후대의 회고는 그의 반대가 공개적이고 분명했으며, 헝가리 사태 뒤 당의 노선과 소련에 대한 충성 문제를 둘러싸고 결별했다고 설명한다. 나폴리 공산당 지방 서기는 그를 ‘부르주아적 일탈’로 비난했고 당에서 제명했다. 이후 레알레는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진영으로 옮겨갔으며, 1957년 주간지 『코리스폰덴차 소찰리스타』(Corrispondenza Socialista)를 주세페 아베라르디와 함께 창간했다. 이 잡지는 공산당원, 정치적 망명자, 이탈리아 및 외국 지식인을 끌어들였고, 10년 넘게 발행되었다. 그의 당내 이탈은 단순한 조직 변경이 아니라 헝가리 사태를 계기로 공산주의 운동과 사회주의적 권리의 관계를 새롭게 제기한 정치적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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