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함대를 이끌고 오데사와 세바스토폴을 방어한 해군 제독, 그리고 대피 논쟁의 주인공
1941년 6월 22일, 적기 접근 보고에 옥탸브리스키는 "지시대로 행동하라"며 사격 명령을 거부했다. 참모장이 독자적으로 포문을 열었지만, 그 짧은 지연 동안 항만에 기뢰가 투하되었다.
소련 흑해함대의 전시 사령관. 1939년부터 흑해함대를 지휘하며 바르바로사 작전 발발 직후 오데사와 세바스토폴 방어전을 진두지휘했고, 케르치-페오도시야 상륙작전을 조직했다. 1943년 남오제레이카 상륙작전 실패로 경질되었다가 1944년 흑해함대 사령관으로 복귀해 크림·오데사·야시-키시뇨프 작전에 기여했다. 1944년 제독으로 진급했고 전후 해군 제1부사령관을 지냈으며, 1958년 영웅도시 세바스토폴의 방어를 이끈 공로로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세바스토폴 함락 직전 자신과 지휘부만 빠져나오고 수만 명의 수비대를 남겼다는 비판은 오늘날까지 논쟁으로 남아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8–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8발트함대 자원입대, 내전 참전
- 1920발트함대 기뢰학교 졸업
- 1924이바노프에서 옥탸브리스키로 개명 (10월 혁명 기념)
- 1938–1939아무르 소함대 사령관, 하산 호 전투 참전
- 1939–1943흑해함대 사령관 — 오데사·세바스토폴 방어
- 1943–1944아무르 소함대 사령관 (경질 후 좌천)
- 1944–1948흑해함대 사령관 복귀, 제독 진급 (1944.4.10)
- 1948–1951해군 제1부총사령관
- 1957–1960나히모프 흑해고등해군학교장
- 1960–1969국방부 총감찰단 감찰고문
관련 역사 사건
1943년 해임과 1944년 복귀: 아무르 소함대 경유
1943년 7월 옥탸브리스키는 흑해함대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아무르 소함대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발단은 1943년 2월 남오제레이카 상륙작전의 실패였다. 이 인사는 그를 흑해함대에서 물러나게 하려던 앞선 시도를 대신 관철한 결과였다. 1942년 12월 해군인민위원 쿠즈네초프는 그를 흑해함대 사령관에서 면직하고 자카프카즈 전선 군사평의회 위원 겸 부사령관으로 옮기자고 제안했으나, 국방위원회가 이를 기각했다.
후임으로는 블라디미르스키 부제독이 임명되었다. 그의 흑해함대 지휘는 오래가지 못했다. 1943년 10월 구축함 지도함 하리코프와 구축함 2척이 공습으로 침몰했고, 11월에서 12월 사이 옐티겐 상륙작전도 실패했다. 블라디미르스키는 이 두 사건의 책임으로 해임되었고, 1944년 3월 옥탸브리스키가 흑해함대로 복귀했다. 복귀한 함대는 크림과 카프카즈 해방에 기여했고, 그는 1944년 4월 10일 제독으로 진급했다.
이 교체는 지휘관 개인의 좌천과 복귀만이 아니라, 1943년 흑해 연안에서 이어진 상륙작전 실패와 함대 손실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임무 실패와 손실의 책임은 옥탸브리스키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후임자도 같은 방식으로 해임되었고, 그는 다시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