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다를랑

François Darlan

비시 정부의 실권자였다가 토치 상륙 뒤 연합국과 손잡고 암살된 프랑스 제독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1939년 그를 위해 만든 함대 제독 계급에 올랐고, 2차 세계대전 초 프랑스 해군 총사령관이었다. 1940년 휴전 뒤 페탱의 비시 정부에서 해군장관을 지냈고, 1941년 2월 부총리와 외무·내무·국방장관을 겸해 사실상 정부를 이끌었다. 1942년 4월 독일의 요구로 장관직을 라발에게 넘겼으나 프랑스군 총사령관 자리는 지켰다. 그해 11월 연합군이 상륙할 때 알제에 있던 그는 아이젠하워와의 거래로 북·서아프리카 고등판무관이 되는 대가로 프랑스군의 저항을 멈추게 했다. 12월 24일 스무 살의 왕당파 청년 보니에 드 라샤펠에게 암살되었다.

다른 이름: 장 루이 그자비에 프랑수아 다를랑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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