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드 라 로크

François de La Rocque
프랑스 프랑스 1885–1946 ○ 억류 후유증으로 병사

의사당 앞에서 대열을 돌린 불의 십자단의 대령

2월 6일 밤 그의 대열은 하원 뒤편까지 이르렀으나 그는 돌입 대신 해산을 명령했다. 좌파는 그 밤에서 파시즘의 총연습을 보았고 극우는 그를 배신자라 불렀다. 두 평가는 그 뒤로도 그를 함께 따라다녔다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생시르를 거쳐 모로코와 1차 대전에서 복무하고 중령으로 예편한 직업군인. 1931년부터 참전군인 조직 불의 십자단을 이끌며 수십만 규모의 대중운동으로 키웠고, 규율과 자동차 대열을 앞세운 그 행동양식은 프랑스 좌파에게 파시즘의 얼굴로 보였다. 1934년 2월 6일 밤 그의 대열은 하원 뒤편까지 이르렀으나 그는 돌입 대신 해산을 명령했고, 이 신중함 때문에 극우 진영 안에서 배신자로 몰렸다. 1936년 인민전선 정부가 동맹을 해산하자 프랑스사회당(PSF)을 세워 선거정치로 방향을 틀었고, 이 당은 1930년대 말 프랑스 최대의 우파 정당이 되었다. 1940년 페탱을 지지해 비시 국민평의회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영국에 정보를 넘기는 조직을 운영하다 1943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독일에 억류되었고, 해방 뒤에는 비시 부역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다시 구금되었다가 1946년 병으로 죽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는가 아니면 권위주의적 보수의 프랑스적 형태였는가는 스테른헬 이래 오늘날까지 프랑스 우파 연구의 중심 논쟁으로 남아 있다.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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