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표도로비치 라스콜니코프

Фёдор Фёдорович Раскольников
소련 러시아 1892–1939 → 망명지 사망

볼가 소함대 사령관에서 망명 비판자로: 스탈린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외교관

1918년 12월, 구축함 스파르타크 호에서 영국군에 나포될 때 — 에스토니아인 선원으로 위장하고 감자 자루 속에 숨었으나, 에스토니아어를 한마디도 못해 정체가 탄로났다.

내전기 볼가·발트함대 사령관을 지낸 볼셰비키 해군 지휘관. 외교관으로 복무하다 1938년 소환을 거부하고 망명, 1939년 〈스탈린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으로 대숙청을 공개 규탄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탈린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1938년 4월 소환을 거부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라스콜니코프는, 1939년 7월 소련 대법원에서 '법외자'로 선고받자 이에 대한 답변으로 그해 8월 17일 유서적인 문서를 완성했다. 〈스탈린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은 라스콜니코프 사후인 10월 1일, 파리 망명 신문 《노바야 로시야》에 게재되었다.

이 서한은 대숙청의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라스콜니코프는 모스크바 공개재판이 "중세 마녀재판을 능가하는 더러운 조작"이며, 카메네프·지노비예프·부하린·리코프레닌의 동지들에게 강요된 자백과 처형은 스탈린 자신이 직접 그들을 요직에 임명해 놓고 '인민의 적'으로 몰아간 자작극이라고 고발했다. "누가 소위 '인민의 적'을 국가·당·군대의 책임 있는 지위에 앉혔는가? 이오시프 스탈린이다"라는 구절은 서한의 논리를 압축한다.

서한은 정치적 숙청을 넘어, 1936년 헌법의 민주적 약속을 짓밟고 선거를 단일 후보 찬반 투표로 전락시킨 점, 투하쳅스키·블류헤르·예고로프 원수 등 적군 지휘부를 숙청하여 전쟁 직전 국방력을 스스로 파괴한 점, 필냐크·메이예르홀트·콜초프 같은 작가와 예술가를 탄압하고 도서를 소각한 문화적 질식을 낱낱이 폭로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트로츠키주의는 물론 어떤 반대파에도 가담한 적 없는 충성파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그런 인물의 배반이야말로 체제에 가장 깊은 균열을 냈다.

그리보예도프의 시구 "나는 당신에 관한 진실을 말하리니, 그것은 어떤 거짓말보다 더 나쁘리라."로 시작되는 이 서한은 1960년대 중반 소련에서 사미즈다트로 은밀히 유통되다가, 1988년 페레스트로이카를 거치며 마침내 공식 출판되었다. 라스콜니코프는 1963년 사후 복권되었으나, 이 서한의 존재 때문에 1969년 다시 '당과 소비에트 국가의 중상모략자'로 낙인찍혔다가 고르바초프 시기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명예 회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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