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톨리핀의 넥타이」라는 말로 교수대를 고발한 카데트의 두마 연사
푸리슈케비치 씨가 무라비요프의 목걸이라 부르는 그것을, 그의 후손들은 아마도 스톨리핀의 넥타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트베리 지방의 진보적 젬스트보 활동가로 출발해 입헌민주당(카데트) 창당에 참여했고 4회 연속 국가두마 의원을 지낸 러시아 자유주의 정치인이다. 두마 최고의 연설가 중 하나로 불렸으며, 1907년 11월 17일 연단에서 스톨리핀의 야전군법회의를 비판하며 「스톨리핀의 넥타이」라는 말을 남겨 격분한 총리의 결투 신청을 받고 사과해야 했다.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핀란드 담당 위원을 지냈고 10월 혁명에 반대하여 백군 진영에 가담했으며, 패배 후 망명하여 스위스 로잔에서 생을 마감했다.
경력 연표
- 1876세르비아-튀르크 전쟁 의용군 참전
- 1877–1895트베리 현 젬스트보 활동가, 베세곤스크 현 귀족 대표(1879–1891)
- 1898–1904페테르부르크 변호사, 학생 시위 항의 서명으로 추방
- 1904–1905젬스트보 대회·연회 캠페인 공동 조직, 입헌민주당(카데트) 창당 참여
- 1906–1917제1~4차 국가두마 카데트 의원, 중앙위원
- 1917.03–05임시정부 핀란드 담당 위원
- 1918–1920백군 진영 참여, 세르비아·폴란드 파견 대표
- 1920–1933망명: 파리, 이후 로잔에서 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