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 신문」 문예란을 맡은, 엥겔스가 꼽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시인」
1822년 데트몰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상인 수습을 했다. 1843~1846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섬유 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공업화가 낳은 노동자의 빈곤을 보았고, 엥겔스와 가까이 지내며 차티스트 지도자들과 사귀었다. 1846년 브뤼셀로 옮겨 마르크스와 어울렸고, 공산주의 통신위원회와 공산주의자동맹의 연락원으로 일했다. 1848년 4월 마르크스·엥겔스와 쾰른으로 가 「신라인 신문」의 영국·벨기에 담당 편집자로 문예란을 이끌며 귀족 풍자 『슈나프한스키 기사의 삶과 행적』을 연재했다. 이 풍자로 1850년 3개월 옥고를 치른 뒤 문학을 접고 무역상으로 떠돌다 1856년 아바나에서 열병으로 죽었다.
다른 이름: 게오르크 루트비히 베르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3–1846브래드퍼드 섬유 회사 직원
- 1846브뤼셀 이주
- 1848–1849「신라인 신문」 문예란 편집자
- 18503개월 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