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예프 형제」로 《차파예프》를 만든 두 감독 가운데 한 사람
볼로그다에서 태어나 내전기에 붉은 군대에서 복무했다. 1924년부터 외국 영화를 재편집하다가 같은 편집실의 동성(同姓) 세르게이 바실리예프와 짝을 이루었다. 형제가 아니었지만 세상의 오해를 받아들여 「바실리예프 형제」로 영화를 냈다. 《차파예프》(1934)는 한 해에 3000만 명 넘게 보았고 1941년 스탈린상 1등급을 받았다. 1946년 류블랴나의 요양소에서 후두 결핵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28세르게이 바실리예프와 첫 공동 영화 《빙해의 위업》
- 1934《차파예프》 공동 연출
- 1941《차파예프》로 스탈린상 1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