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세르게예비치 파블로프

Георгий Сергеевич Павл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10–1991 ✕ 자살

브레즈네프의 18년 당 살림꾼, '당의 금' 지기

1991년 8월 쿠데타 실패 몇 주 후, 80세의 파블로프는 모스크바 그라나트니 거리 자택 발코니에서 몸을 던졌다.

게오르기 파블로프는 1965년부터 1983년까지 18년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관리국장을 지내며 당 중앙기구의 물적·행정적 기반을 총괄한 인물이다. 드네프로제르진스크 금속공업학교에서 브레즈네프보다 한 학년 아래로 함께 수학했으며, 마리 자치공화국 당 제1서기와 당-국가통제위원회 부서장을 거쳐 브레즈네프 집권 직후 관리국장에 발탁되었다. 당의 재정·건설·출판·요양 시설을 장악하고 1980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1년 8월 쿠데타 실패 직후 모스크바 자택 발코니에서 투신 자살했으며, 후임 니콜라이 크루치나도 한 달 앞서 같은 방식으로 사망하여 '당의 금' 의문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당 재정과 행정 기반의 확대

1965년 중앙위원회 관리국장에 임명된 파블로프는 당의 재정과 자산을 운영하는 기구를 맡았다. 1974년 3월 5일 중앙위원회에 제출한 8쪽 보고서에서 그는 당 예산의 수입이 1965년 4억 4,800만 루블에서 1973년 9억 루블로, 지출은 4억 8,700만 루블에서 8억 5,300만 루블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당비와 출판 수입이 주요 재원이었고, 그는 1970년부터 국가예산의 8천만 루블 보조금 없이 운영하게 됐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재정 확대가 당 기구의 임금과 시설에 어떻게 쓰였는지도 수치로 제시했다. 1965~1973년 사이 에스토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30개 주위원회, 259개 시위원회, 1,448개 구위원회 청사가 건설됐고, 정치교육원 69곳과 당 문서고 43곳도 마련됐다. 같은 기간 지방 당 기관과 시설 종사자용 아파트 6만 3천 채, 중앙위원회 및 중앙 당 기관 직원용 아파트 3,714채가 준공됐다. 1973년 지방 당 기관 차량은 승용차 1만 대와 운전사 없는 승용차 1,700대, 트럭 700대, 버스 290대였으며, 관리국 차고에는 별도로 승용차 280대와 트럭 60대, 버스 35대가 있었다.

파블로프는 당 간부의 휴양·치료 시설도 확장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관리국이 운영하는 15개 요양원, 5개 휴양소, 1개 기숙형 휴양시설은 한 번에 약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당 재정은 조직 유지뿐 아니라 건물·주택·교통·복지 시설로 전환됐고, 파블로프의 관리국은 중앙과 지방 당 조직의 이러한 물적 기반을 예산과 자산 배분으로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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