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예브게니예비치 프로코피예프

Георгий Евгеньевич Прокофьев
소련 러시아 1895–1937 ✕ 처형

경제 파괴 사건을 만들어 낸 부인민위원

1934년 미국 《타임》지는 프로코피예프를 "공장 고장이 나면 기술자를 '사보타주'로 총살하는 일을 관장하는" OGPU 산업 담당 인민위원으로 묘사했다.

OGPU 경제국장으로 소련 기술 전문가들을 겨냥한 '파괴 공작' 사건들을 조작한 체키스트. NKVD 제2부인민위원까지 올랐으나 야고다 실각 후 1937년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OGPU 경제국과 '파괴 공작' 사건들

1926년 프로코피예프가 OGPU 경제국(ЭКУ)을 맡았을 때, 이 부서는 아직 작은 규모였다. 그러나 1928년 샤흐티 재판을 기점으로 경제국은 스탈린의 '부르주아 전문가' 숙청을 집행하는 핵심 기관으로 부상했다. 샤흐티 사건에서는 돈바스 탄광의 기술자 53명이 '파괴 공작' 혐의로 체포되었고, 11명에게 사형이 구형되었다. 이 재판은 소련 형법 제58조의 '사보타주' 조항이 본격 가동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코피예프의 경제국은 이후 식품·군수·철도·금융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로 '파괴 공작' 수사를 확대했다. 1930년 '산업당' 재판, 1931년 멘셰비키 재판 등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의 지휘 아래 OGPU 경제국은 생산 실패와 사고를 '계급 적'의 고의적 사보타주로 규정하고, 구 정권 시절 훈련받은 기술 전문가들을 조직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34년 《타임》지에 '공장 고장 후 기술자를 사보타주로 총살하는 일을 관장하는' 자로 묘사될 만큼, 프로코피예프의 이름은 곧 '경제 파괴 사건 조작'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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