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페트로비치 라주몹스키

Георгий Петрович Разумов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36–

페레스트로이카 인사교체의 설계자, 마지막 생존 정치국원

1989년 1월, 빌뉴스 시당은 보고선거 비판에 대한 답변을 두 번째로 요구했으나 라주몹스키의 답변은 없었고, 그해 12월 리투아니아 공산당은 독자노선을 선언했다.

고르바초프 시기 중앙위 조직당사업부장(1985~1988)과 당건설간부정책위원회 위원장(1988~1990)을 맡아 페레스트로이카 최대 규모의 간부 교체를 주도한 당 조직·인사 책임자였다. 농학자 출신으로 크라스노다르 지방당 제1서기(1983~1985)를 거쳐 1986년 중앙위 서기 겸 정치국 후보위원에 발탁되었다. 당내 민주화를 내세운 고르바초프 아래에서, 라주몹스키가 중앙에서 내려보낸 엄격한 대의원 할당은 리투아니아 공산당의 반발과 분리 독립을 촉발한 연쇄 요인이 되었다. 상하이 총영사(1990~1992)를 지냈고, 2025년 현재 1986년 정치국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소련 정치국

1990.07 미재선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제19차 당협의회 대의원 선정과 리투아니아의 반발

1988년 소집된 제19차 전연방 당협의회는 1941년 이후 처음 열린 당협의회였다. 라주몹스키는 조직당사업부장으로서 이 회의의 대의원 선출 준비와 회의 실무를 맡은 당 기구의 책임자였다.

모스크바로 파견될 리투아니아 대의원단은 빌뉴스에서 공개적인 논란의 대상이었다. 1988년 7월 9일에는 사유디스가 빙기스 공원에 10만 명 이상을 모아 모스크바의 협의회에서 돌아온 대의원들을 맞았다. 대의원 명부가 중앙에서 짜여 내려왔다는 불만은 이 무렵부터 리투아니아에서 공개적으로 터져 나왔다.

1990년 7월 제28차 당대회에서는 대의원 선출 규정이 다시 바뀌어, 상급 당기관이 대의원 정원의 약 10%를 자기 명부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치는 당시 진행 중이던 지구·시 단위 경선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리투아니아에서 이런 실무 관행은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1989년 1월 빌뉴스 시 당 조직은 중앙 조직당사업부에 대의원 할당과 선거 경과에 대한 비판을 담은 서한을 보내고 답신을 요구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20일 리투아니아 공산당 제20차 대회는 대의원 1,033명 중 855명의 찬성으로 당이 「자체 강령과 규칙을 가진 독립적인 정치조직」임을 선언하고 소련 공산당과의 관계를 끊었다. 리투아니아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과 결별한 첫 공화국 당이 되었다.

조직당사업부에서 올라와 리투아니아 문제를 계속 취급해 온 관료가 그해 상하이 총영사라는 변방으로 밀려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라주몹스키는 1990년 7월 제28차 당대회에서 중앙위 서기와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를 함께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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